필라델피아 MOVE 폭격 사건, 경찰 헬기 폭탄으로 어린이 5명 포함 11명 사망·주택 61채 소실(1985)
1985-05-13 — 2021-05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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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5년 5월 13일 필라델피아 경찰이 흑인 해방 단체 MOVE의 오세이지가 주택에 헬기로 폭탄을 투하해 어린이 5명을 포함한 11명이 숨지고 이웃 주택 61채가 불탄, 미국 경찰의 공중 폭격 사건이다.
2. 전개 과정[편집]
11개 기록 · 1972 ~ 2020-11
존 아프리카, 필라델피아에서 MOVE 결성
MOVE는 1972년 존 아프리카(빈센트 리패트)가 필라델피아에서 만든 흑인 중심의 급진적 공동체 조직이다. 구성원들은 모두 '아프리카'라는 성을 쓰고 자연 친화적 삶을 강조했으며 기술 문명과 정부 권위를 거부했다. 이들은 확성기로 정치적 구호를 외치고 집 안에 많은 동물을 키우는 등 이웃과 마찰을 빚었다. 시 당국은 위생과 소음을 이유로 단속을 이어 갔고 양측의 적대감이 쌓였다. 이 갈등은 훗날 대규모 충돌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파웰턴 빌리지 총격전, 경찰관 1명 사망
1978년 8월 8일 필라델피아 경찰은 파웰턴 빌리지에 있는 MOVE 본부 퇴거 작전을 벌이다 총격전에 휘말렸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제임스 램프가 숨졌고 다수의 경찰과 소방관, MOVE 구성원이 다쳤다. 이후 MOVE 구성원 9명이 3급 살인 혐의로 유죄를 받아 30년에서 100년형을 선고받았다. 구성원들은 사건 당시 경찰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양측의 불신을 고착시켰고 이후 MOVE는 필라델피아 서부 오세이지가로 거점을 옮겼다.
MOVE, 서필라델피아 오세이지가 6221번지로 이전
1981년 무렵 남은 MOVE 구성원들은 서필라델피아 코브스크리크 지역 오세이지가의 연립주택으로 옮겨 생활했다. 이웃 주민들은 확성기 소음과 쓰레기, 위생 문제, 지붕 위 방어 시설 설치 등에 불만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시 당국에 대응을 호소했으나 시는 오랫동안 이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MOVE 쪽은 무기를 모으고 대치를 준비한다는 우려도 컸다. 그 결과 갈등이 1985년 대규모 충돌로 번질 토대가 마련되었다.
경찰 500여 명 투입, 90분간 1만 발 이상 총격
1985년 5월 13일 필라델피아 경찰은 약 500명을 투입해 오세이지가의 MOVE 구성원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했다. 이웃 주민은 사전에 대피했고 양측은 약 90분간 교전을 벌여 경찰이 쏜 총알만 1만 발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MOVE 쪽은 지붕의 벙커에서 대치했고 경찰의 최루가스와 물대포도 소용이 없었다. 시 당국은 결국 건물 지붕의 벙커를 제거하기 위한 극단적 수단을 택했다. 이 결정은 시장 윌슨 구드의 승인 아래 경찰국장 등이 내린 것이다.
오후 헬기에서 폭탄 투하, 화재 방치로 61채 소실
그날 오후 경찰 헬기는 지붕의 벙커를 향해 토벡스와 C-4 폭약으로 만든 폭탄 두 발을 투하했다. 폭발로 지붕에 불이 붙자 소방 당국은 곧바로 진화하지 않고 불을 지켜보는 방침을 택했고 화재는 약 90분간 번졌다. 불길은 이웃 주택으로 번져 61채가 불에 타고 약 250명이 집을 잃었다. 불은 밤 11시 47분께 진압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미국 경찰이 민간 주택에 공중 폭격을 한 것은 이 사건이 유일하다는 평가가 많다.
잿더미 속에서 11명 사망 확인, 생존자 2명
폭격 이튿날 구조대는 잔해에서 어른 6명과 어린이 5명 등 모두 11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생존자는 13세 소년 버디 아프리카와 라모나 아프리카 두 명뿐이었다. 시신 수습 장면이 알려지면서 시민 사회에서는 경찰의 대응이 정당했는지에 대한 비판이 폭발했다. 이웃 주민들은 집과 재산을 잃고 임시 숙소로 옮겨야 했다. 사건은 미국 도시 공권력의 한계와 인종 갈등을 상징하는 사례가 되었다.
생존자 라모나 아프리카만 폭동·공모 혐의로 복역
사건 이후 형사 처벌을 받은 사람은 시 공무원이 아니라 생존자 라모나 아프리카였다. 그는 폭동과 공모 혐의로 유죄를 받아 약 7년간 복역하고 풀려났다. 이는 사건의 가해와 피해가 뒤바뀐 결과라는 비판을 낳았다. 그는 이후 MOVE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시 정부의 책임을 지속적으로 묻는 활동을 했다. 사건 책임 문제는 민사 소송으로 이어졌다.
MOVE 위원회, '폭탄 투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 결론
1986년 시 특별조사위원회(MOVE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사람이 있는 연립주택에 폭탄을 투하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unconscionable)'이라고 결론지었다. 위원회는 경찰과 소방 당국, 시 지도부의 판단 오류를 지적했고 구드 시장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형사 책임을 지고 기소된 시 공무원은 없었다. 구드는 이후 재선에 성공했고 비판이 일었다. 책임 규명이 도덕적 비난에 그쳤다는 점이 오래도록 논란이 되었다.
연방 배심, 경찰의 과잉 진압 책임 인정
1996년 연방 법원 배심은 필라델피아시와 관련 공무원이 과잉 진압으로 수정헌법 제4조를 위반했다고 평결하고 150만 달러의 배상을 명령했다. 라모나 아프리카에게도 50만 달러가 인정되었다. 앞서 1995년 법원은 공무원들이 면책 특권을 가졌더라도 시 정부에는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시 당국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결론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배상 금액은 사건의 참상에 비해 작다는 평가가 많았다.
민사 재판서 이재민에게 1,283만 달러 배상 평결
2005년 이웃 주민들이 낸 소송에서 배심은 시가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 약 1,283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주민들은 화재를 방치한 시 당국의 결정으로 재산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고 호소했다. 사건 이후 오세이지가는 재건되었지만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재판은 폭격 피해자 상당수가 보상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사건 책임자에 대한 형사 처벌은 끝내 없었다.
필라델피아 시의회, 공식 사과 결의
2020년 필라델피아 시의회는 1985년 MOVE 폭격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결의는 5월 13일을 성찰의 날로 삼는 내용도 담았다고 알려졌다. 사건 35년 만에 시 의회가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2025년 사건 40주년에도 시의회는 추모와 성찰을 요청하는 결의를 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과 이웃은 여전히 충분한 책임 규명과 보상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필라델피아 MOVE 폭격 사건, 경찰 헬기 폭탄으로 어린이 5명 포함 11명 사망·주택 61채 소실(1985), 어떤 사건인가요?
- 1985년 5월 13일 필라델피아 경찰이 흑인 해방 단체 MOVE의 오세이지가 주택에 헬기로 폭탄을 투하해 어린이 5명을 포함한 11명이 숨지고 이웃 주택 61채가 불탄, 미국 경찰의 공중 폭격 사건이다.
- 필라델피아 MOVE 폭격 사건, 경찰 헬기 폭탄으로 어린이 5명 포함 11명 사망·주택 61채 소실(1985), 언제 일어났나요?
- 1985-05-13부터 2021-05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필라델피아 MOVE 폭격 사건, 경찰 헬기 폭탄으로 어린이 5명 포함 11명 사망·주택 61채 소실(1985),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2021-05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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