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마켓 사건, 시카고 노동 집회 폭탄 투척과 무정부주의자 사형
1886-05-01 — 1893-06-26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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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886년 5월 시카고 8시간 노동제 파업 지지 집회에서 폭탄이 터져 경찰과 노동자가 숨지자 무정부주의자 8명이 증거 없이 유죄 판결을 받아 4명이 교수형에 처해졌고, 1893년 앨트겔드 주지사가 남은 3명을 사면하며 재판의 부당함을 밝힌 사건.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886-05-01 ~ 1893-06-26
8시간 노동제 요구 총파업
1886년 5월 1일 미국 전역에서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총파업이 벌어졌다. 전국적으로 약 30만
5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며 시카고에서는 3만4만 명이 파업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진다. 시카고는 무정부주의 계열 노동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파업은 대체로 평화적으로 이뤄졌으나 사용자와 신문들은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이 긴장은 며칠 뒤 폭력 사태의 배경이 되었다.맥코믹 공장 앞 경찰 발포
5월 3일 시카고 맥코믹 수확기 공장 앞에서 파업 노동자들과 대체 인력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발포해 최소 2명이 숨졌고 일부 신문은 6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무정부주의 계열 신문 편집자 아우구스트 슈피스는 이 현장에 있었다. 분노한 노동운동가들은 다음 날 헤이마켓 광장에서 항의 집회를 열기로 했다. 이 사건이 다음 날 일어난 폭탄 사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헤이마켓 광장 집회와 폭탄 투척
5월 4일 저녁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약 600~3,000명이 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사로는 슈피스, 앨버트 파슨스, 새뮤얼 필든 등이 나섰다. 밤 10시 30분경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던 중 누군가 다이너마이트 폭탄을 던져 경관 매티어스 디건이 숨졌다. 곧 총격전이 벌어져 경찰 7명과 노동자 최소 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폭탄을 던진 사람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무정부주의자 대대적 검거
사건 직후 시카고 경찰은 무정부주의 계열 인사들과 노동운동 단체, 신문사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색과 검거에 나섰다. 폭탄 투척자는 특정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선동했다는 이유로 수사가 이뤄졌다. 언론은 외국 출신 급진주의자를 겨냥한 적대적 보도를 쏟아냈다. 여론은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반감으로 기울었다. 이 분위기 속에서 8명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 결과: 7명 사형, 1명 징역 15년
1886년 6월부터 열린 재판에서 8명의 무정부주의자가 음모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중 누가 폭탄을 던졌는지에 대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고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도 2명에 불과했다. 8월 20일 배심은 전원 유죄를 평결했고 7명에게 사형, 오스카 니브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다.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당시부터 국내외에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판결은 이후 미국 노동운동 탄압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2명 감형, 루이스 링 옥중 자살
1887년 11월 10일 일리노이 주지사 리처드 오글스비는 사형수 중 새뮤얼 필든과 마이클 슈바브의 형을 종신형으로 감형했다. 같은 시기 루이스 링은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외에서 감형 탄원이 이어졌지만 나머지 4명에 대한 집행은 막지 못했다. 감형 소식은 일부 지지자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나 여전히 판결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사형 집행은 바로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었다.
슈피스 등 4명 교수형 집행
1887년 11월 11일 아우구스트 슈피스, 앨버트 파슨스, 아돌프 피셔, 조지 엥겔 4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들은 '헤이마켓 순교자'로 불리게 되었고 장례 행렬에는 수많은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처형은 미국과 유럽 노동운동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사건의 재판 과정에 대한 비판이 계속 이어졌다. 이 사건은 국제 노동절의 기원 중 하나로 이어진다.
제2인터내셔널, 5월 1일 노동 시위 결의
1889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사회주의 노동자 대회는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국제 시위를 정하고, 헤이마켓 사건을 기리는 의미로 5월 1일을 택했다. 이 결의는 오늘날 국제 노동절의 기원으로 흔히 설명된다. 헤이마켓 사건은 이렇게 세계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미국에서는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로 정해 별개로 기념하게 된다. 이후 5월 1일 행사는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 연대의 날로 이어졌다.
앨트겔드 주지사, 생존 피고 3명 사면
1893년 6월 26일 일리노이 주지사 존 피터 앨트겔드는 수감 중이던 필든, 슈바브, 니브 3명을 사면했다. 그는 약 1만 8천 단어에 달하는 사면 사유서에서 재판이 불공정했다고 지적했다. 증거가 이들의 유죄를 입증할 수 없었고 배심 구성에도 편견이 있었다는 취지였다. 이 결정은 정치적 후폭풍을 불러 앨트겔드의 정치 경력에 큰 타격이 되었다. 오늘날 이 사건은 미국 사법 역사의 대표적인 오심 사례로 평가된다.
3. 같이 보기[편집]
-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보스턴 492명 사망과 화재법 개정(1942)— 사회·도시
- 이스트랜드호 참사, 시카고 강 정박 중 전복으로 840여 명 사망(1915)— 사회·도시
- 1981 브릭스턴 폭동, 불심검문 갈등과 스카먼 보고서— 사회·도시
- 2005년 프랑스 방리외 소요 사태, 클리시수부아 10대 감전사에서 비상사태까지— 사회·도시
- 런던 로난 포인트 아파트 붕괴 참사, 가스 폭발과 연쇄 붕괴 및 조립식 고층주택 불신— 사회·도시
- 뒤스부르크 러브퍼레이드 압사 참사, 터널 진입로 병목으로 21명 사망과 10년 만의 무판결 종결— 사회·도시

자주 묻는 질문
- 헤이마켓 사건, 시카고 노동 집회 폭탄 투척과 무정부주의자 사형, 어떤 사건인가요?
- 1886년 5월 시카고 8시간 노동제 파업 지지 집회에서 폭탄이 터져 경찰과 노동자가 숨지자 무정부주의자 8명이 증거 없이 유죄 판결을 받아 4명이 교수형에 처해졌고, 1893년 앨트겔드 주지사가 남은 3명을 사면하며 재판의 부당함을 밝힌 사건.
- 헤이마켓 사건, 시카고 노동 집회 폭탄 투척과 무정부주의자 사형, 언제 일어났나요?
- 1886-05-01부터 1893-06-26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헤이마켓 사건, 시카고 노동 집회 폭탄 투척과 무정부주의자 사형,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893-06-26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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