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보스턴 492명 사망과 화재법 개정(1942)
1942-11-28 — 19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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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42년 11월 28일 보스턴 나이트클럽 코코넛 그로브에서 정원 460명의 두 배가 넘는 손님이 있던 중 불이 나 492명이 숨졌으며, 잠긴 출구와 가연성 장식이 문제로 지적되어 소유주가 과실치사 유죄를 받고 미국 화재 안전 규정이 강화되었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27 ~ 1946-12
코코넛 그로브 개점
코코넛 그로브는 1927년 악단 지휘자 미키 알퍼트와 자크 르나르의 동업으로 보스턴 베이빌리지의 피드몬트가 17번지에 문을 열었다. 이후 보스턴의 대표적인 사교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건물은 이후 여러 차례 개조되었고 실내는 야자수 등 장식으로 꾸며졌다. 훗날 화재 때 이 장식이 불길을 키운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변호사 바니 웰란스키가 클럽 소유권 승계
1931년부터 클럽을 소유한 갱단 두목 찰스 '킹' 솔로몬이 1933년 사망한 뒤 그의 변호사 바니 웰란스키가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웰란스키는 정치인들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 클럽은 영업 확장 과정에서 건물 안전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 소유권 변동은 훗날 재판의 책임 소재와 직결되었다.
멜로디 라운지에서 발화, 순식간에 클럽 전체로 번짐
1942년 11월 28일 밤 10시 15분경 멜로디 라운지에서 불이 났다. 장식용 야자수 잎 근처에서 불길이 일었을 때 16세 종업원 스탠리 토마셰프스키가 현장에 있었으나 정확한 발화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불은 5분 안에 클럽 전체로 번졌다. 법정 정원 460명인 클럽 안에는 1,000명 이상이 있었다. 출구가 잠겨 있었고 유일한 정문은 회전문이어서 탈출을 가로막았다.
사망자 492명으로 집계, 병원에 환자 쇄도
화재로 492명이 숨져 미국 역사상 최악의 나이트클럽 화재로 기록되었다. 병원에는 화상 환자 약 444명이 이송되었고 이 중 약 130명만 생존했다. 보스턴시립병원에는 300명 이상이 이송되어 11초마다 한 명씩 도착했다고 전해진다. 에어컨에 사용된 염화메틸 가스가 전시 프레온 부족으로 쓰였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도시 의료 체계는 한계에 이르렀다.
머크사가 페니실린을 긴급 공수, 생존자 13명이 초기 치료받음
1942년 12월 머크사는 32리터의 페니실린을 보스턴에 긴급 공급했다. 생존자 13명이 인간에게 투여된 초기 페니실린 치료 대상이 되었다. 화상 환자의 피부 이식 감염을 막는 데 효과를 보였고 이는 정부가 페니실린 대량 생산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은 같은 해 4월 혈액 은행을 설치해 두었다. 이 참사는 현대 화상 치료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웰란스키, 19건의 과실치사 유죄로 징역 12~15년
1943년 재판에서 웰란스키는 19건의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징역 12~15년을 받았다. 법원은 잠긴 출구와 정원 초과, 안전 관리 소홀 책임을 물었다. 이 사건은 업주 개인의 형사 책임을 엄하게 물은 사례로 평가된다. 다른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있었으나 웰란스키가 핵심 책임자로 지목되었다.
룬드·브라우더 화상 면적 평가표 발표
1944년 찰스 룬드와 뉴턴 브라우더는 화상 면적을 추정하는 방법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평가표는 코코넛 그로브 화재 환자 치료 경험이 바탕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쓰인다. 1947년에는 올리버 코프와 프랜시스 무어가 화상 면적에 따른 수액 공급 공식을 발표했다. 정신과 의사 에리히 린데만은 유족의 애도 반응을 연구했다. 참사는 의학·심리학에 큰 영향을 남겼다.
웰란스키, 약 4년 복역 후 사면되고 9주 만에 사망
1946년 12월 웰란스키는 당시 주지사 모리스 토빈에 의해 조용히 사면되어 노퍽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그는 약 4년을 복역한 상태였고 병이 깊었으며 석방 9주 뒤 사망했다. 사면은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다. 한편 매사추세츠와 다른 주들은 가연성 장식 금지, 바깥쪽으로 열리는 비상문 의무화, 독립 전원 비상구 표시 등 화재법을 강화했다. 이 규정은 연방 화재 규제의 기초가 되었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보스턴 492명 사망과 화재법 개정(1942), 어떤 사건인가요?
- 1942년 11월 28일 보스턴 나이트클럽 코코넛 그로브에서 정원 460명의 두 배가 넘는 손님이 있던 중 불이 나 492명이 숨졌으며, 잠긴 출구와 가연성 장식이 문제로 지적되어 소유주가 과실치사 유죄를 받고 미국 화재 안전 규정이 강화되었다.
-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보스턴 492명 사망과 화재법 개정(1942), 언제 일어났나요?
- 1942-11-28부터 1946-12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보스턴 492명 사망과 화재법 개정(1942),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46-12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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