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레일리아 지하 탄광 화재, 60년 넘게 타는 불과 유령 마을
1962-05-27 — 진행 중
진행 중 · 최종 갱신
이 문서는 실제 사건·사고를 시간순으로 정리합니다. 편집 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세요.
1. 개요[편집]
1962년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센트레일리아에서 쓰레기장 소각 불이 폐탄광 갱도로 번져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있으며, 지반 붕괴와 일산화탄소 위험으로 주민 대부분이 이주하고 우편번호까지 폐지돼 1,000명이 넘던 마을이 사실상 사라진 도시 재난이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62-05-27 ~ 2013
쓰레기장 정리하려 놓은 불이 폐탄광 갱도로 번져
1962년 5월 27일 센트레일리아 자치구는 폐탄광 구덩이에 있던 불법 쓰레기장을 정리하려고 쓰레기를 태웠다. 5월 29일과 6월 4일에도 불길이 계속 보여 소방대가 호스로 물을 뿌렸지만 완전히 끄지 못했다. 구덩이 벽에 있던 높이 약 4.5m의 구멍이 석탄층이 얽힌 지하 갱도로 통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정확한 발화 원인은 지금도 논쟁 중이며 1932년 콜리어리 화재의 불씨가 남아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불은 눈에 띄지 않게 석탄층을 따라 번지기 시작했다.
첫 굴착 진화 실패, 산소 유입이 불길을 키워
1962년 8월부터 10월 사이 브리디사가 불타는 지점을 파내 불을 끄려 했으나 장비가 부족했고 굴착으로 산소가 유입되면서 오히려 불이 더 거세졌다. 석탄층이 여러 갱도와 이어진 지하 구조에서는 파낸 곳을 막지 못하면 새 공기 통로가 생긴다는 한계가 드러났다. 지역 당국은 비용과 기술 문제로 근본적인 차단 작업에 나서지 못했다. 펜실베이니아주와 연방 당국도 초기에는 사안을 지역 문제로 간주했다. 이 시기에 불을 잡지 못한 것이 이후 수십 년의 재난을 낳았다고 평가된다.
두 번째 시도도 실패, 급수관 동결과 장비 고장
1962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K&H 굴착사가 물을 흘려 넣는 방식으로 불을 잡으려 했으나 급수관이 얼고 장비가 고장 나면서 작업이 중단되었다. 이 방식은 불이 번진 범위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어 효과를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불은 이후 수년간 지하에서 천천히 확산되었고 주민들은 대부분 이를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몇 해 지나 마을 곳곳에서 땅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땅이 따뜻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초기 두 번의 실패는 이 화재가 단순한 쓰레기 불이 아님을 보여준 분기점이었다.
주유소 지하 탱크 온도 78도, 위험이 현실로
1979년 주유소를 운영하던 마을 인사가 지하 휘발유 탱크의 온도를 재다가 화씨 172도(섭씨 78도 안팎)까지 달아오른 것을 발견했다. 탱크 주변 지반이 불길의 열로 가열되고 있다는 뜻으로, 마을 아래 불이 이미 상당히 퍼졌음을 보여준 신호였다. 주민들은 지하 가스 농도를 측정했고 일부 집에서는 일산화탄소 수치가 위험 수준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때부터 연방과 주 당국이 관심을 가졌고 지역사회에서도 이주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 발견은 문제를 뒤늦게 공론화했다.
12세 소년 토드 돔보스키, 뒷마당 싱크홀에 추락
1981년 2월 14일 12세 소년 토드 돔보스키는 뒷마당에서 땅이 꺼지며 연기 나는 싱크홀에 빠졌다. 구멍은 깊이 약 45m(150피트)에 달했고 치명적인 수준의 일산화탄소가 차 있었다. 소년은 나무뿌리를 붙잡고 버티다가 사촌의 도움으로 구조되었다. 이 사고는 전국 언론에 보도되어 센트레일리아 문제를 전국적으로 알렸다. 이후 연방 당국의 조사와 지원이 빨라지고 이주를 요구하는 주민이 급증했다.
의회 4,200만 달러 이주 예산 승인
1984년 미 의회는 센트레일리아 주민의 이주를 위해 4,200만 달러를 책정했다. 주민 대다수는 집을 정부에 팔고 떠나는 쪽을 택했으나 일부는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이주 보상은 가구별 평가액을 기준으로 이뤄졌고 많은 이웃이 인근 마을로 흩어졌다. 마을 인구는 1980년 1,017명에서 2000년 21명으로 줄었다. 이 예산은 화재 자체를 끄는 데 쓰이지 않고 사람을 대피시키는 데 쓰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수용권 발동으로 주택 몰수
1992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수용권을 발동해 센트레일리아의 남은 주택과 건물을 몰수하고 철거하도록 했다. 이 조치는 이주를 거부하던 주민들을 사실상 강제로 떠나게 했고, 주민 일부는 소송으로 맞섰다. 건물 철거로 마을의 도로와 집터가 빈 공터로 변하고 도로 일부는 균열과 연기로 폐쇄되었다. 한편 일부 주민은 보상금이 부족하다고 반발했다. 수용권 발동은 지역 공동체의 해체를 사실상 확정한 조치로 평가된다.
우편번호 17927 폐지
2002년 미 우정청은 센트레일리아의 우편번호 17927을 폐지했다. 이는 인구가 거의 남지 않은 마을이 행정적으로도 사실상 소멸했음을 상징하는 조치였다. 이때까지 마을에는 몇 명만 남아 살았고 과거 번화했던 거리와 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이후 마을 옆 옛 61번 국도 구간은 갈라지고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으로 유명해져 방문객이 몰렸다. 안전 문제로 당국은 출입 제한 조치를 이어갔다.
잔류 주민, 평생 거주권 얻는 합의
2013년 마을에 남은 소수의 주민은 법정 다툼 끝에 평생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는 합의를 얻어냈다. 남은 주민은 7~8명 안팎으로 전해진다. 화재는 약 1,500만㎡(3,700에이커) 규모의 지하 석탄층에서 깊이 최대 약 90m까지 타고 있으며 앞으로 수백 년 더 탈 수 있다는 추정이 있다. 당국은 불을 끄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해 사실상 자연 소진에 맡기고 있다. 센트레일리아는 광산 안전과 환경 규제 실패의 상징으로 남았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센트레일리아 지하 탄광 화재, 60년 넘게 타는 불과 유령 마을, 어떤 사건인가요?
- 1962년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센트레일리아에서 쓰레기장 소각 불이 폐탄광 갱도로 번져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있으며, 지반 붕괴와 일산화탄소 위험으로 주민 대부분이 이주하고 우편번호까지 폐지돼 1,000명이 넘던 마을이 사실상 사라진 도시 재난이다.
- 센트레일리아 지하 탄광 화재, 60년 넘게 타는 불과 유령 마을, 언제 일어났나요?
- 1962-05-27부터 현재(진행 중)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센트레일리아 지하 탄광 화재, 60년 넘게 타는 불과 유령 마을,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아직 진행 중인 사건입니다. 최종 갱신일은 2013입니다.
개선 제안
이 문서에 대한 개선을 제안할 수 있어요. 제안은 관리자 검토 후 반영됩니다.
개선 제안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