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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도시종결

1952년 런던 대스모그 참사, 석탄 연기 속에 최대 1만 2천 명 사망

1952-12-05 — 195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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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52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런던에 기온역전과 무풍 상태가 이어지고 가정과 발전소의 석탄 연기가 갇히면서 시야가 1피트까지 줄어든 스모그가 도시를 덮쳤으며, 당시 공식 집계 4,000명보다 훨씬 많은 약 1만 2천 명이 숨져 1956년 대기오염방지법이 제정된 환경 재난이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52-12-05 ~ 2004

19523건
  1. 고기압과 기온역전으로 런던 상공에 연기가 갇히기 시작

    1952년 12월 5일 런던에 고기압이 자리 잡고 바람이 거의 없는 상태가 이어지며 기온역전이 발생했다. 추운 날씨로 가정마다 석탄 난로를 더 많이 때면서 연기가 대기에 쌓였다. 전후 경제 사정 때문에 수출용 양질 석탄 대신 황 함량이 높은 저급 석탄이 가정용으로 많이 쓰였다. 풀럼과 배터시 및 뱅크사이드 같은 석탄 화력발전소도 오염을 더했다. 이렇게 겹친 조건이 이후 며칠간 런던을 짙은 황록색 안개로 덮은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2. 시야 약 30cm로 감소, 대중교통·행사 마비

    1952년 12월 7일 무렵 스모그는 시야를 약 1피트, 곧 30센티미터 안팎까지 줄일 만큼 짙어졌다. 연기와 안개가 실내까지 스며들어 극장과 영화관 상영이 취소되었고 야외 스포츠와 공연도 중단되었다. 지하철을 제외한 대중교통이 사실상 멈췄고 앰뷸런스 운행도 어려워졌다. 당시 하루에 연기 입자 1,000톤과 염산 140톤 및 이산화황 370톤이 배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민들은 '피 수프'라 불리던 짙은 안개에 익숙한 편이었으나 이번에는 호흡 곤란 환자가 급증했다.

  3. 바람이 불며 스모그 해소, 사망자 급증 확인

    1952년 12월 9일 바람이 불면서 닷새간 이어진 스모그가 걷히기 시작했다. 이후 병원과 장의사 쪽에서 평소보다 사망자가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정부는 초기에 약 4,000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사망자의 상당수는 고령자와 어린이 및 기관지염과 심장질환 환자였다. 당시 대중의 인식은 불편한 날씨 정도였기 때문에 피해 규모가 알려진 뒤 충격은 더 컸다.

19532건
  1. 마커스 리프턴 의원, 사망자 6,000명 추산 제기

    1953년 2월 노동당 마커스 리프턴 의원은 스모그 관련 사망자가 6,000명에 이르고 질병수당 청구도 2만 5천 건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부 공식 집계보다 훨씬 큰 숫자였다. 스모그 이후 몇 달 동안 사망률이 높은 상태가 이어졌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처음에 규제 입법에 소극적이었지만 의회 질의와 언론 보도가 이어지며 압박이 커졌다. 이 논쟁은 이후 정부가 공식 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배경이 되었다.

  2. 비버 위원회 중간 보고서, 오염과 일일 사망률의 상관관계 확인

    1953년 12월 휴 비버가 이끄는 대기오염 위원회는 중간 보고서를 내고 연기와 이산화황 오염이 일일 사망률과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가정용 연료 규제와 청정 연료 보급 및 산업 배출 관리 강화를 제안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어 갔다. 이는 정부가 대기오염을 공중보건 문제로 공식 인정한 신호였다. 다만 가정의 석탄 난방 문화와 비용 문제 때문에 입법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위원회 보고서는 이후 대기오염방지법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19541건
  1. 윌킨스 분석, 초과사망 약 1만 2천 명 추산

    1954년 1월 과학산업연구부의 E. T. 윌킨스는 스모그 이후 1952년 12월부터 1953년 3월 사이 초과사망이 약 8,000명 더 있었다고 계산했다. 이를 합산하면 총 약 1만 2천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당시 독감으로 잘못 분류된 것으로 지적되었다. 이 분석은 당시 공식 4,000명 숫자보다 세 배 규모의 피해를 가리켰다. 윌킨스의 추정은 이후 연구에서도 대체로 타당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561건
  1. 대기오염방지법 제정, 도시 무연 지대 도입

    1956년 대기오염방지법이 제정되어 무연 지대 지정과 가정의 연기 배출 규제가 가능해졌다. 이 법은 가정이 개방형 석탄 난로에서 가스와 코크스 등 청정 연료로 바꾸도록 보조하는 제도를 포함했다. 법 시행으로 도시 대기의 연기 오염은 점차 줄어들었다. 다만 1962년 12월 다시 스모그 사건이 발생해 개선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이후 1968년 대기오염방지법으로 규제가 한층 강화되었다.

20041건
  1. 벨 등 연구진, 사망자 약 1만 2천 명 재확인

    2004년 벨과 데이비스 및 플레처 연구진은 환경보건전망에 실린 논문으로 1952년 스모그 사망자를 약 1만 2천 명으로 재추산했다. 이는 정부 공식 집계의 세 배에서 네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연구진은 같은 시기 독감 유행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초과사망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윌킨스가 1954년 내놓은 계산이 상당히 정확했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이 연구는 대기오염 단기 노출이 대규모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대표 사례로 인용된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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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1952년 런던 대스모그 참사, 석탄 연기 속에 최대 1만 2천 명 사망, 어떤 사건인가요?
1952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런던에 기온역전과 무풍 상태가 이어지고 가정과 발전소의 석탄 연기가 갇히면서 시야가 1피트까지 줄어든 스모그가 도시를 덮쳤으며, 당시 공식 집계 4,000명보다 훨씬 많은 약 1만 2천 명이 숨져 1956년 대기오염방지법이 제정된 환경 재난이다.
1952년 런던 대스모그 참사, 석탄 연기 속에 최대 1만 2천 명 사망, 언제 일어났나요?
1952-12-05부터 1956-07-05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1952년 런던 대스모그 참사, 석탄 연기 속에 최대 1만 2천 명 사망,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56-07-05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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