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워터 사건, 클린턴 부부의 아칸소 부동산 투자 의혹과 스타 독립검사의 6년 수사
1994-01-20 — 2000-09-20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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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79년 아칸소 오자크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비롯돼 매디슨개런티 저축대부조합 파산, 해블 사임, 터커 주지사 유죄평결 등으로 번지며 1994년부터 독립검사 수사와 의회 청문회가 이어진 사건으로, 2000년 클린턴 부부 기소 불충분으로 종결됐다.
2. 전개 과정[편집]
10개 기록 · 1979 ~ 2002-03-20
맥두걸 부부와 클린턴 부부의 화이트워터 부동산 개발 동업
아칸소 오자크 산악지대의 약 200에이커 부지를 휴양 분양지로 개발하는 화이트워터 개발회사가 제임스·수전 맥두걸 부부와 당시 아칸소 법무장관이던 빌 클린턴·힐러리 클린턴 부부의 50대 50 동업으로 출발했다. 클린턴 부부는 맥두걸 부부와 동일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은 채 지분을 가졌다는 점이 훗날 문제가 됐다. 사업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적자 상태에 빠졌다. 이 사업이 1990년대 초 클린턴 대통령 선거운동과 취임 이후 정치 공세의 출발점이 되었다.
매디슨개런티 저축대부조합 파산, 납세자 부담 7300만 달러
맥두걸 부부가 운영하던 저축대부조합 매디슨개런티는 위법하게 취득한 30만 달러 대출 등으로 부실한 화이트워터 사업을 지탱했다. 조합은 결국 파산했고 납세자가 부담한 손실은 약 7300만 달러에 달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속했던 로즈 로펌이 매디슨개런티 관련 법률 업무를 맡은 사실도 이해충돌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파산은 훗날 클린턴 부부의 개입 여부를 둘러싼 수사의 핵심 대상이 되었다.
레노 법무장관, 로버트 피스크를 특별검사로 임명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1월 12일 레노 법무장관에게 독립검사 임명을 요청했고, 1월 20일 로버트 피스크 2세가 화이트워터 수사를 맡게 됐다. 수사 범위는 클린턴 행정부 관계자들이 파산한 매디슨개런티를 조사하던 정리신탁공사(RTC)의 업무에 개입했는지 여부였다. 피스크는 백악관 법률고문 빈센트 포스터의 사망도 함께 조사해 극단적 선택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야당인 공화당은 피스크 수사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더 강력한 수사를 요구했다.
웹스터 해블 법무차관, 로즈 로펌 청구 의혹으로 사임
힐러리 클린턴의 전 로펌 동료였던 웹스터 해블 법무차관이 1994년 3월 로즈 로펌 시절의 청구 관행 의혹이 제기되자 갑작스럽게 사임했다. 해블은 그해 12월 우편사기와 탈세 혐의를 인정하며 전 동료와 고객으로부터 최소 39만 4000달러를 편취했다고 시인했다. 이후 그는 21개월을 복역했다. 해블 사건은 화이트워터 수사가 클린턴 측근들의 개인 비리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케네스 스타, 피스크 후임 독립검사로 임명
1994년 8월 5일 부시 행정부 시절 법무차관을 지낸 케네스 스타가 피스크의 후임 독립검사로 임명됐다. 독립검사법 개정으로 연방 항소법원 재판부가 인선을 맡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피스크가 교체됐다. 스타는 매디슨개런티뿐 아니라 헤일의 소규모 사업 대출, 짐 가이 터커의 케이블 사업, 클린턴의 주지사 선거운동까지 수사 범위를 넓혔다. 이후 수사는 수년간 이어지며 '끝없는 수사'라는 비판도 받았다.
상원 화이트워터 청문회 개시, 포스터 사무실 문서 반출 의혹
1995년 7월 18일 공화당 알폰스 다마토 상원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상원 화이트워터 청문회가 13일 일정으로 시작됐다. 청문회는 포스터가 숨진 날 밤 그의 집무실에서 문서가 반출됐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이어 하원 은행위원회 청문회도 열려 두 청문회는 1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나 두 청문회 모두 불법 행위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로즈 로펌 청구 기록, 2년 만에 백악관 관저에서 발견
1996년 1월 힐러리 클린턴의 로즈 로펌 청구 기록이 백악관 관저에서 발견됐다. 이 기록은 규제 당국이 소환장으로 요구한 지 약 2년 뒤에야 나타났고, 그동안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야당은 기록 은폐 또는 지연 제출이 아니냐고 비판했으며 백악관은 고의 은폐를 부인했다. 이 사건은 화이트워터 수사에서 백악관의 협조 문제를 둘러싼 공방을 키웠다.
리틀록 배심, 터커 주지사와 맥두걸 부부 24건 유죄평결
1996년 5월 28일 리틀록 연방 배심은 스타 독립검사가 기소한 사기·공모 사건에서 짐 가이 터커 아칸소 주지사와 제임스·수전 맥두걸에게 총 24건의 유죄평결을 내렸다. 터커는 간 질환 등을 이유로 4년 보호관찰형을 받았고, 제임스 맥두걸은 협조를 조건으로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수전 맥두걸은 징역 2년 형에 더해 스타의 대배심 증언을 거부해 법정모독으로 18개월을 추가 복역했다. 다만 이 재판에서 클린턴 부부는 기소되지 않았다.
로버트 레이 독립검사, 클린턴 부부 기소 불충분 결론
1999년 10월 스타의 뒤를 이은 로버트 레이 독립검사는 2000년 9월 클린턴 부부가 범죄 행위에 고의로 가담했음을 배심에서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결론지었다. 약 6년간의 수사에 쓰인 비용은 약 5200만 달러였다. 수사 결과 해블, 맥두걸 부부, 터커 등 여러 관련자가 유죄로 처리됐으나 대통령 부부는 기소되지 않았다. 제임스 맥두걸은 복역 중 사망했고, 수전 맥두걸은 법정모독으로 18개월을 복역했다.
화이트워터 최종 보고서 공개
2002년 3월 독립검사실의 화이트워터 최종 보고서가 공개되었고 언론은 이를 클린턴 부부에게 불기소 결론을 낸 보고서로 보도했다. 보고서는 클린턴 부부가 범죄에 고의로 가담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2000년의 판단을 확인했다. 보고서 공개로 수년간 정국을 흔든 화이트워터 수사는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수사는 이후 르윈스키 사건과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는 독립검사 수사 논란의 배경이 되었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화이트워터 사건, 클린턴 부부의 아칸소 부동산 투자 의혹과 스타 독립검사의 6년 수사, 어떤 사건인가요?
- 1979년 아칸소 오자크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비롯돼 매디슨개런티 저축대부조합 파산, 해블 사임, 터커 주지사 유죄평결 등으로 번지며 1994년부터 독립검사 수사와 의회 청문회가 이어진 사건으로, 2000년 클린턴 부부 기소 불충분으로 종결됐다.
- 화이트워터 사건, 클린턴 부부의 아칸소 부동산 투자 의혹과 스타 독립검사의 6년 수사, 언제 일어났나요?
- 1994-01-20부터 2000-09-20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화이트워터 사건, 클린턴 부부의 아칸소 부동산 투자 의혹과 스타 독립검사의 6년 수사,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2000-09-20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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