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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종결

라본 사건, 이스라엘의 이집트 내 위장 폭탄 공작 실패와 국방장관 사임·벤구리온 정권 위기

1954-07 — 196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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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54년 이스라엘 군정보부가 이집트 유대인 조직원을 동원해 영국·미국 시설에 폭탄 공작을 벌이다 발각된 사건으로, 처형과 투옥에 이어 라본 국방장관 사임, 1960년 재점화, 1963년 벤구리온 총리 사임으로 이어졌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54 ~ 1963-06

19544건
  1. 영국군 수에즈 철수 협상과 이스라엘의 위기감

    1954년 이집트와 영국이 수에즈 운하 지대에서 영국군을 철수시키는 문제를 협상하자 이스라엘 지도부는 크게 경계했다. 영국군이 운하 지대에 주둔하는 것이 안정과 억지력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철수하면 이집트가 소련과 가까워지고 시나이를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불안이 이스라엘 군 일각이 영·미의 철수 반대 여론을 키우는 공작을 구상하게 된 배경이다. 수산나 작전은 이러한 지정학적 판단에서 출발했다.

  2. 군정보부 아만, '수산나 작전' 개시와 이집트 유대인 조직원 동원

    군정보부(아만) 부장 벤야민 기블리 대령이 주도한 수산나 작전은 이집트 내 영국·미국 소유 민간 시설을 폭탄 공격해 이집트의 불안정을 조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이집트 유대인 청년들이 모집돼 영화관, 도서관, 미국 교육 시설 등을 목표로 폭탄을 설치하도록 했다. 폭탄은 폐관 몇 시간 뒤 터지도록 설계되었고, 공격은 무슬림형제단, 공산주의자, 현지 민족주의자의 소행으로 위장하려 했다. 이 공작은 사상자를 내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외교적 신뢰를 크게 손상시켰다.

  3. 알렉산드리아 영화관 폭탄 발화와 조직 발각

    1954년 7월 하순 알렉산드리아에서 폭탄 장치가 오작동하면서 조직원이 체포되었고, 이집트 보안당국은 이를 실마리로 조직망을 추적했다. 이어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의 조직원들이 줄줄이 검거되었고 일부는 수감 중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쪽 지휘 요원들은 대부분 이집트를 빠져나갔으나 현지 조직원들은 이집트 법정에 서게 되었다. 공작 실패 직후 이스라엘 정부 안에서는 누가 이를 승인했는지를 둘러싼 의혹이 시작되었다.

  4. 카이로 재판 개시, 이집트 유대인 피고인 간첩 혐의

    1954년 12월 11일 카이로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을 위해 활동했다는 혐의로 이집트 유대인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피고인들은 영국과 미국, 이집트의 관계를 파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재판은 1955년 1월 27일까지 이어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처음에는 공작과의 관련을 부인하고 이집트의 반유대주의적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19552건
  1. 카이로 법정 판결, 마르조크·아자르 사형 선고

    1955년 1월 27일 이집트 법원은 모셰 마르조크와 슈무엘 아자르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다른 두 명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나머지 여섯 명은 장기 징역형을 받았다. 두 사형수는 같은 달 말 처형되었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처형된 이들을 기리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나 정부는 수년간 이들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요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2. 라본 국방장관 사임, 벤구리온 국방장관 복귀

    공작 지시자를 가리기 위한 조사가 거듭됐지만 누가 작전 개시를 명령했는지는 끝내 확정되지 않았다. 샤레트 총리와 라본 국방장관은 공작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고, 기블리 아만 부장은 라본의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라본은 1955년 2월 국방장관직에서 사임했고 벤구리온이 2월 17일 국방장관으로 복귀했다. 벤구리온은 같은 해 11월 총리직에도 복귀했다.

19601건
  1. 라본 사건 재점화, 7인 장관위원회의 결론과 벤구리온의 거부

    1960년 라본 사건이 새로운 증언과 문서 위조 의혹으로 다시 불거지며 집권 마파이당이 혼란에 빠졌다. 7인 장관위원회는 라본이 공작을 지시하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벤구리온은 이 결론을 거부하고 별도의 법적 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이 대립으로 벤구리온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지고 당내 분열이 심화되었다.

19631건
  1. 벤구리온 총리 사임, 라본 사건이 정권 붕괴의 한 요인

    1963년 6월 벤구리온이 총리직에서 사임했으며 라본 사건은 그의 정치적 몰락에 기여한 주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1954년의 실패한 공작은 거의 10년에 걸쳐 이스라엘 정치를 뒤흔들었다. 누가 작전을 지시했는지는 끝내 확정되지 않은 채 남았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대한 문민 통제 논의의 계기로도 자주 언급된다.

3. 같이 보기[편집]

분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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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라본 사건, 이스라엘의 이집트 내 위장 폭탄 공작 실패와 국방장관 사임·벤구리온 정권 위기, 어떤 사건인가요?
1954년 이스라엘 군정보부가 이집트 유대인 조직원을 동원해 영국·미국 시설에 폭탄 공작을 벌이다 발각된 사건으로, 처형과 투옥에 이어 라본 국방장관 사임, 1960년 재점화, 1963년 벤구리온 총리 사임으로 이어졌다.
라본 사건, 이스라엘의 이집트 내 위장 폭탄 공작 실패와 국방장관 사임·벤구리온 정권 위기, 언제 일어났나요?
1954-07부터 1963-06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라본 사건, 이스라엘의 이집트 내 위장 폭탄 공작 실패와 국방장관 사임·벤구리온 정권 위기,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63-06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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