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워리어호 폭침 사건
1985-07-10 — 1988-05-06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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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5년 7월 프랑스 대외안보총국(DGSE) 요원들이 오클랜드항에 정박한 그린피스 선박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폭침시켜 사진작가 1명이 숨졌고, 이는 프랑스 국방장관 경질과 유엔 중재를 부른 국제 스파이 스캔들로 번졌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85-07-10 ~ 2015-09-06
오클랜드항서 폭탄 두 발, 사진작가 사망
1985년 7월 10일 밤 뉴질랜드 오클랜드 항구에 정박해 있던 그린피스의 반핵 캠페인 선박 레인보우 워리어호 선체에서 폭탄 두 발이 잇따라 터졌다. 이 배는 남태평양 무루로아 환초에서 예정된 프랑스의 핵실험에 반대하는 시위 선단을 이끌기 위해 정박 중이었다. 첫 번째 폭발 이후 배 안에 있던 포르투갈 출신 사진작가 페르난도 페레이라가 장비를 챙기러 돌아갔다가 두 번째 폭발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배는 순식간에 침수돼 가라앉았고 나머지 선원들은 긴급 대피했다. 뉴질랜드 경찰은 즉각 이를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프랑스 국적 위장요원 부부 체포
폭발 발생 2주 만인 1985년 7월 24일 뉴질랜드 경찰은 위조 스위스 여권으로 입국해 활동하던 부부를 체포했다. 이들은 실제로는 프랑스 대외안보총국(DGSE) 소속 요원 도미니크 프리외르 대위와 알랭 마파르 소령으로 밝혀졌다. 수사 결과 이들 외에도 요트를 타고 폭발물과 잠수 장비를 실어 나른 별도 공작조가 있었고, 그린피스에 위장 취업한 여성 요원이 사전 정찰을 담당한 사실도 드러났다. 프랑스 정부는 초기에는 자국 정보기관의 개입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뉴질랜드가 확보한 증거가 구체화되면서 외교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됐다.
DGSE 국장 라코스트 전격 경질
사건에 대한 프랑스 정부 개입 의혹이 짙어지자 1985년 9월 19일 프랑스 대외안보총국(DGSE) 국장 피에르 라코스트 제독이 전격 해임됐다. 라코스트는 훗날 이 작전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재가 아래 이뤄졌다고 회고해 파장을 낳기도 했다. 그의 경질은 폭침 사건에 대한 프랑스 정부 차원의 책임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신호탄이었다. 정치권과 언론은 국방부와 정보기관 수뇌부의 개입 여부를 놓고 연일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사흘 뒤 총리의 공식 인정으로 이어지는 전조가 됐다.
파비우스 총리 "프랑스 요원 소행" 공식 인정, 국방장관 경질
1985년 9월 22일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총리는 TV 생중계 연설을 통해 레인보우 워리어호 폭침이 프랑스 대외안보총국 요원들의 소행이었다고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그는 이번 작전이 명령 계통에 따라 실행됐다고 밝혀 정부 차원의 조직적 개입을 시인했다. 이 발표 직후 국방장관 샤를 에르뉘가 책임을 지고 전격 사임했다. 우방국 영토에서 민간 환경단체 선박을 국가 정보기관이 폭파했다는 사실은 서방 진영 내에서도 유례없는 파장을 일으켰다. 뉴질랜드는 이를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국가 테러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마파르·프리외르, 과실치사 혐의 유죄 인정
1985년 11월 4일 오클랜드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마파르와 프리외르는 과실치사와 기물 파손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두 사람은 애초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혐의를 부인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증거가 명백해지자 이례적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는 프랑스와 뉴질랜드 사이에서 물밑으로 진행되던 형량 협상과 맞물린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뉴질랜드 검찰은 이번 인정을 프랑스의 국가적 개입을 사법적으로 재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선고를 앞두고 양국 간 외교적 신경전은 더욱 팽팽해졌다.
10년형 선고와 하오 환초 이송 합의
1985년 11월 22일 마파르와 프리외르에게 각각 징역 10년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프랑스가 무역 보복을 시사하며 압박한 끝에 두 사람은 뉴질랜드 감옥 대신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하오 환초의 군사기지로 이송돼 3년간 격리 수용하는 것으로 별도 합의가 이뤄졌다. 이 절충안은 이후 유엔 사무총장 중재를 통해 공식화됐다. 뉴질랜드 여론은 살인에 관여한 요원들이 사실상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는 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양국은 격화되는 외교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이 방안을 받아들였다.
유엔 중재 판정, 프랑스 700만달러 배상
1986년 7월 6일 유엔 사무총장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뉴질랜드와 프랑스 간 분쟁에 대한 구속력 있는 중재 판정을 내렸다. 판정에 따라 프랑스는 뉴질랜드에 700만 달러를 배상하고 공식 사과하며 유럽공동체에 대한 뉴질랜드의 수출을 방해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또 마파르와 프리외르를 하오 환초에서 3년간 격리 수용하도록 한 기존 합의도 재확인됐다. 이 중재는 한 국가가 타국 영토에서 벌인 비밀공작에 대해 국제법상 책임을 인정한 이례적 선례로 남았다. 그러나 이후 프랑스가 합의를 온전히 지키지 않으면서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었다.
요원 두 명 조기 귀국, 뉴질랜드 거센 반발
하오 환초 3년 격리 합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알랭 마파르는 1987년 말 건강상의 이유로 먼저 프랑스로 송환됐고, 도미니크 프리외르 역시 1988년 5월 6일 임신을 이유로 조기 귀국했다.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처벌은커녕 훈장을 받고 진급하며 사실상 영웅 대접을 받아 뉴질랜드 국민의 공분을 샀다. 뉴질랜드 정부는 합의 위반이라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프랑스는 별다른 제재 없이 이를 강행했다. 이 사건은 이후에도 프랑스에 대한 뉴질랜드의 뿌리 깊은 불신으로 남았다.
30주년 앞두고 전직 요원 첫 공개 사과
사건 발생 30주년을 앞둔 2015년 9월 6일 폭발물 운반을 도왔던 전직 DGSE 요원 장뤽 콜롱이 프랑스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 사과했다. 그는 페르난도 페레이라의 죽음에 유감을 표하며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작전의 세부 실체를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그의 증언은 폭발물을 실어 나른 공작조의 역할을 새롭게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그린피스와 유족 측은 뒤늦은 사과라면서도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 사건은 30년이 지난 뒤에도 국가 정보기관의 해외 비밀공작이 갖는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여전히 거론된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레인보우 워리어호 폭침 사건, 어떤 사건인가요?
- 1985년 7월 프랑스 대외안보총국(DGSE) 요원들이 오클랜드항에 정박한 그린피스 선박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폭침시켜 사진작가 1명이 숨졌고, 이는 프랑스 국방장관 경질과 유엔 중재를 부른 국제 스파이 스캔들로 번졌다.
- 레인보우 워리어호 폭침 사건, 언제 일어났나요?
- 1985-07-10부터 1988-05-06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레인보우 워리어호 폭침 사건,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88-05-06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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