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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힐즈버러 축구장 압사 참사

1989-04-15 — 2021-07-28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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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열린 FA컵 준결승 중 경찰의 통제 실패로 관중 압사 사고가 발생해 97명이 숨졌고, 30년 만에 경찰 책임이 공식 인정된 참사다.

2. 전개 과정[편집]

10개 기록 · 1989-04-15 14:52 ~ 2021-07-28

19893
  1. 게이트 C 개방 명령, 압사의 도화선

    1989년 4월 15일 셰필드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열린 리버풀과 노팅엄포레스트의 FA컵 준결승전에서, 리버풀 팬들에게 배정된 레핑스레인 스탠드는 회전문 7개만으로 만 명 넘는 인파를 소화해야 해 경기장 밖에서 극심한 병목 정체가 빚어졌다. 경기 시작 8분 전인 오후 2시 52분, 현장 지휘를 맡은 데이비드 더킨필드 경정은 바깥의 압박을 완화하려고 비상용 출구 게이트 C를 열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이미 만원이던 중앙 스탠딩석 3·4구역으로 별도 안내 없이 약 2천 명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치명적인 과밀이 시작됐다. 관중 난동을 막기 위해 설치된 펜스가 탈출을 가로막아 압사 위험을 더욱 키웠다.

  2. 경기 중단, 94명 그 자리에서 숨져

    경기는 예정대로 오후 3시에 킥오프됐지만 6분 만에 관중석에서 벌어지는 참사를 인지한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중앙 펜스에 짓눌린 팬들은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해 서로 겹쳐 쓰러졌고, 일부는 펜스를 넘어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이날 현장에서 94명이 숨졌고 이후 병원에서 1명이 추가로 사망해 95명, 훗날 식물인간 상태로 투병하던 2명이 각각 1993년과 2021년 세상을 떠나며 공식 사망자는 97명으로 늘었다. 이는 영국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남아 있다.

  3. 더 선 '진실' 왜곡 보도로 리버풀 팬에 책임 전가

    참사 나흘 뒤인 4월 19일 영국 타블로이드지 더 선은 '진실(The Truth)'이라는 제목의 1면 기사에서 일부 리버풀 팬들이 희생자의 주머니를 털고, 구조 중인 경찰에게 소변을 보고, 인공호흡을 하는 경찰을 폭행했다는 허위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는 실제로는 경찰의 통제 실패가 원인이었던 참사의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뒤집어씌운 것으로 훗날 완전히 허위로 판명됐다. 리버풀 지역사회는 이 보도에 격분해 수십 년간 이어지는 더 선 불매 운동을 시작했다. 이 사건은 영국 언론 윤리 논쟁의 대표 사례로 남았다.

19901
  1. 테일러 보고서, 경찰 책임 지목하며 전좌석제 의무화

    피터 테일러 판사가 이끈 정부 조사위원회는 1989년 8월 중간보고서에 이어 1990년 1월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며 참사의 근본 원인이 사우스요크셔 경찰의 군중 통제 실패에 있다고 명확히 결론지었다. 보고서는 관중 난동 방지를 위해 설치됐던 경기장 펜스가 오히려 대피를 막아 인명피해를 키웠다며 모든 펜스 철거를 권고했다. 아울러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최상위 리그 경기장에 입석 없는 전좌석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이 권고는 이후 영국 프로축구 경기장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911
  1. 초기 검시 배심, '사고사' 평결로 30년 진실규명 투쟁 시작

    1991년 진행된 최초 검시 배심은 희생자들의 사인을 '사고사(accidental death)'로 평결하며 사실상 경찰의 형사 책임을 묻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이 평결이 경찰의 조직적 책임 회피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힐즈버러 정의 캠페인'을 결성해 진상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20년 넘게 유가족들은 정부와 사법기관을 상대로 재조사를 요구하는 끈질긴 법적·정치적 투쟁을 이어갔다. 이 캠페인은 훗날 영국 사회에서 시민 진상규명 운동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20121
  1. 독립조사단, 경찰의 진술 조작·은폐 폭로... 캐머런 총리 사과

    2012년 9월 12일 힐즈버러 독립조사단은 사우스요크셔 경찰이 참사 당시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지우기 위해 경관 164명의 진술서 중 116건을 조직적으로 수정했으며, 신속한 대응이 있었다면 최대 41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밝힌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즉각 하원에서 '이 이중의 불의가 그토록 오랫동안 바로잡히지 않은 데 대해 정부와 국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조사단은 리버풀 팬들에게 어떠한 잘못도 없었다고 명확히 밝혀 23년 만에 누명을 벗겨냈다. 이 보고서를 계기로 기존 검시 평결을 파기하고 새 재조사를 여는 절차가 시작됐다.

20141
  1. 새 검시 재조사 개시

    독립조사단 보고서에 따라 기존 '사고사' 평결이 파기되고 2014년 3월 31일 새로운 검시 재조사가 시작됐다. 이는 영국 사법 역사상 최장 기간 진행된 배심 심리 중 하나로, 2년에 걸쳐 유가족과 생존자, 경찰 관계자 등 수백 명의 증언과 방대한 증거가 재검토됐다. 재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사고 직후 응급 대응을 지연시킨 정황과 통제 실패의 세부 경위가 새롭게 드러났다. 이 재조사는 참사의 공식 책임 소재를 다시 규명하기 위한 결정적 절차로 평가됐다.

20161
  1. 배심 '96명 불법 살해' 평결, 팬 책임 완전 배제

    2년에 걸친 재조사 끝에 2016년 4월 26일 배심은 7대 2의 다수결로 96명의 희생자가 '불법적으로 살해(unlawfully killed)'됐다는 역사적인 평결을 내렸다. 배심은 더킨필드 경정이 관중에게 안전 의무를 지고 있었음에도 이를 중대하게 위반해 참사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배심은 리버풀 팬들의 행동이 참사를 초래하거나 악화시키지 않았다고 명확히 밝혀 27년 만에 팬들에 대한 오명을 완전히 벗겨냈다. 이 평결은 법정 안팎에서 눈물과 환호가 뒤섞인 채 받아들여졌다.

20191
  1. 더킨필드, 형사재판서 과실치사 무죄 평결로 유가족 재차 분노

    불법살해 평결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진행된 형사재판에서 2019년 11월 28일 프레스턴 형사법원 배심은 10대 9의 다수결로 더킨필드에게 중과실치사 무죄를 평결했다. 이는 그가 두 번째로 받은 재판으로, 앞서 2019년 초 첫 재판에서는 배심이 평결에 이르지 못해 무효 심리로 끝난 바 있다. 유가족들은 30년 만에 형사 책임을 물을 마지막 기회가 무산됐다며 이 평결을 '치욕'이라 규탄했다. 이로써 참사와 관련해 형사 처벌을 받은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이 사법 절차가 마무리됐다.

20211
  1. 97번째 희생자 앤드루 데바인, 32년 만에 별세

    참사 당시 22세로 뇌 손상을 입고 평생 중증 장애를 안고 살아온 앤드루 데바인이 2021년 7월 28일 관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며 공식적으로 97번째 희생자가 됐다. 검시관은 그의 사망이 32년 전 참사에서 입은 뇌손상에 직접 기인한다며 그 역시 '불법적으로 살해'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의 죽음은 참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비극임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리버풀 구단과 팬들은 그를 추모하며 참사의 완전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힐즈버러법' 제정 운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3. 같이 보기[편집]

분류: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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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영국 힐즈버러 축구장 압사 참사, 어떤 사건인가요?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열린 FA컵 준결승 중 경찰의 통제 실패로 관중 압사 사고가 발생해 97명이 숨졌고, 30년 만에 경찰 책임이 공식 인정된 참사다.
영국 힐즈버러 축구장 압사 참사, 언제 일어났나요?
1989-04-15부터 2021-07-28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영국 힐즈버러 축구장 압사 참사,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21-07-28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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