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딥 스로트' 음란물 기소 사태, 뉴욕 상영 금지에서 해리 림스 멤피스 재판까지(1972~1977)
1972-06-12 — 1977-04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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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72년 6월 뉴욕에서 개봉한 성인영화 '딥 스로트'가 뉴욕 법원에서 음란물로 판정되고, 1976년 멤피스에서 출연 배우 해리 림스가 연방 음란물 운송 공모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가 1977년 항소심에서 뒤집힌 표현의 자유 논쟁 사건이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72-06-12 ~ 1986
뉴욕 극장 개봉과 단속 시작
1972년 6월 12일 성인영화 '딥 스로트'가 뉴욕 맨해튼의 극장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는 제라드 다미아노가 감독하고 린다 러브레이스와 해리 림스가 출연했으며, 제작비는 약 2만 5천 달러로 알려져 있다. 영화가 화제가 되자 뉴욕시 당국은 필름을 압수하고 극장 직원을 체포하는 등 단속에 나섰다. 닉슨 행정부와 종교계, 일부 여성운동 단체도 영화를 비판하며 음란물 논쟁이 전국으로 번졌다. 이 단속은 뒤이은 형사 재판의 출발점이 되었다.
뉴욕 형사법원에서 극장주 음란 혐의 재판 시작
1972년 12월 뉴욕 형사법원에서 영화를 상영한 극장 운영사 매추어 엔터프라이즈에 대한 음란물 상영 혐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장은 조엘 타일러 판사였고 쟁점은 영화가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는지 아니면 노골적인 음란물에 불과한지였다. 법정에서는 영화의 내용과 상영 경위, 당시 지역사회 기준이 다투어졌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영화는 언론 보도 덕에 전국적 관심을 받았다. 판결은 이듬해 3월에 나왔다.
타일러 판사, 영화를 음란물로 판정하고 10만 달러 벌금 부과
1973년 3월 1일 조엘 타일러 판사는 '딥 스로트'가 음란물이라고 판정하고 극장 운영사에 1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는 이 영화를 "썩은 고기와 비루함의 향연", "퇴폐의 바닥"이라 표현하며 영화가 노골적인 하드코어 포르노를 상영하려는 진짜이자 유일한 목적을 가리는 겉치레라고 판단했다. 벌금은 이후 항소 과정에서 감액되었다. 그러나 판결은 오히려 영화에 '꼭 봐야 할 작품'이라는 이미지를 입혀 인기를 키우는 역설을 낳았다. 타일러 판사는 1991년 한 법률 저널에서 "오늘 그 판결문을 쓴다면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라며 사회 규범의 변화를 인정했다.
멤피스 연방 재판, 해리 림스 등 9명 유죄 평결
1976년 멤피스 연방법원에서 약 9주간 이어진 재판 끝에, 배우 해리 림스(본명 허버트 스트라이처)가 주간 음란물 운송 공모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피고인은 림스를 포함해 콜롬보 범죄 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8명 등 총 9명이었고, 평결 시점은 자료에 따라 3월 또는 4월 30일로 엇갈린다. 영화가 상영되지도 않던 멤피스가 재판지로 선택된 것은 보수적인 지역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서라는 비판을 받았다. 감독과 린다 러브레이스는 수사에 협조해 면책을 받았고, 출연료로 100달러를 받았던 림스만 홀로 기소된 점이 논란이 되었다. 림스는 최대 5년 징역과 1만 달러 벌금에 처해질 수 있었고, 그는 '최초로 연방 정부에 의해 출연 자체로 기소된 영화배우'로 불렸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구명 운동과 표현의 자유 논쟁
유죄 평결 뒤 앨런 더쇼위츠 변호사는 "오늘은 해리 림스지만 내일은 말론 브란도나 잭 니콜슨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 부각시켰다. 셜리 맥클레인, 그레고리 펙, 워런 비티, 잭 니콜슨 등 유명 영화인들이 림스를 지지하는 데 나섰다. 방어 비용은 약 40만 달러가 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 운동으로 림스는 성인영화 배우를 넘어 검열 반대의 상징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정확한 지지 행사 시점은 자료에 명시되지 않아 평결 이후 1976년 중으로 표기한다.
항소심에서 림스 유죄 평결 파기
1977년 봄 항소법원은 림스의 유죄 평결을 파기했다. 핵심 이유는 소급 적용 문제로, 1972년의 행위가 1973년 연방대법원이 정립한 새로운 음란 기준으로 판단되었다는 점이었다. 항소심 변론은 앨런 더쇼위츠가 맡았다. 파기 시점은 평결 약 1년 뒤로 전해진다. 이 결정은 출연 배우를 음란물 운송 공모로 처벌하려던 정부 시도에 제동을 건 사례로 남았다.
러브레이스 회고록 '오디얼', 강압 촬영 주장
1980년 린다 러브레이스는 회고록 '오디얼(Ordeal)'을 내고, 첫 남편 척 트레이너가 폭력과 위협으로 자신을 포르노와 영화 출연에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 영화는 2만 5천 달러 예산으로 약 6억 달러를 벌었다고 알려졌다. 이후 그녀는 포르노 반대 활동가로 전환해 1986년 '아웃 오브 본디지'도 출간했다. 회고록은 이 영화가 자발적 연기가 아니라 강요의 산물일 수 있다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음란성 중심이던 사건의 쟁점을 출연자 인권 문제로 확장시켰다.
페라이노 사건 상고 기각, 제작 관계자 유죄 확정
'딥 스로트'의 제작·배급에 관여한 인물들에 대한 연방 사건은 이후에도 이어졌고 1981년 연방대법원은 'Peraino v. United States'의 재심리를 거부했다. 1988년에는 'Armone v. United States'에서도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미국 23개 주에서 음란물로 금지되었다고 전해진다. 즉 출연 배우는 항소에서 구제받았지만 배급 조직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은 유지되었다. 두 상고 기각은 이 사건 기소의 법적 후속 결과로 남았다.
미즈 위원회 증언, "영화를 보는 것은 내가 강간당하는 것"
1986년 린다 러브레이스는 뉴욕에서 열린 미 법무장관 직속 포르노그래피 위원회(미즈 위원회)에서 증언했다. 그녀는 "'딥 스로트'를 본다는 것은 내가 강간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 영화가 아직 상영되는 것은 범죄이며, 촬영 내내 내 머리에 총이 겨눠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증언은 음란물 규제 논의에서 자주 인용되었다. 영화 감독 다미아노는 마피아 성격의 공동 제작자들에게 압박받았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한 적이 있다. 1972년에 시작된 표현의 자유 논쟁이 14년 뒤 피해자 증언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진 셈이다.
3. 같이 보기[편집]
-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모방범죄 논란과 큐브릭의 영국 상영 자진 철회(1971~2000)— 영화·콘텐츠
- HBO 해킹, 2017년 1.5TB 유출과 '왕좌의 게임' 대본 공개·몸값 요구— 영화·콘텐츠
- '카니발 홀로코스트' 외설 재판과 스너프 필름 의혹, 1980년 압수와 감독 유죄— 영화·콘텐츠
- 영화 '클레오파트라' 제작 파국, 감독 교체와 촬영지 이전으로 20세기 폭스 파산 위기 (1958~1963)— 영화·콘텐츠
- 몬티 파이튼의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신성모독 논란, 영국 지방의회·노르웨이·아일랜드 상영 금지 (1978~2009)— 영화·콘텐츠
- #오스카소화이트 논란, 2년 연속 백인 연기 후보와 보이콧·아카데미 다양성 개혁— 영화·콘텐츠

자주 묻는 질문
- 영화 '딥 스로트' 음란물 기소 사태, 뉴욕 상영 금지에서 해리 림스 멤피스 재판까지(1972~1977), 어떤 사건인가요?
- 1972년 6월 뉴욕에서 개봉한 성인영화 '딥 스로트'가 뉴욕 법원에서 음란물로 판정되고, 1976년 멤피스에서 출연 배우 해리 림스가 연방 음란물 운송 공모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가 1977년 항소심에서 뒤집힌 표현의 자유 논쟁 사건이다.
- 영화 '딥 스로트' 음란물 기소 사태, 뉴욕 상영 금지에서 해리 림스 멤피스 재판까지(1972~1977), 언제 일어났나요?
- 1972-06-12부터 1977-04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영화 '딥 스로트' 음란물 기소 사태, 뉴욕 상영 금지에서 해리 림스 멤피스 재판까지(1972~1977),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77-04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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