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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레오파트라' 제작 파국, 감독 교체와 촬영지 이전으로 20세기 폭스 파산 위기 (1958~1963)

1958 — 196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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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0만 달러 규모로 시작한 영화 '클레오파트라'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병환, 감독 교체, 영국에서 로마로의 촬영지 이전과 세트 재건설, 테일러-버튼 스캔들을 거치며 총 4,400만 달러로 불어나 20세기 폭스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간 제작 참사.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59-09 ~ 1963-06-12

19591건
  1. 테일러, 100만 달러와 총수입 10% 조건으로 출연 합의

    1958년 월터 웽어가 카를로 마리아 프란체로의 전기 판권을 확보해 20세기 폭스와 영화화를 추진했다. 1959년 9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100만 달러 출연료와 총수입의 10%를 받는 조건으로 주연을 맡기로 했다. 이 계약은 이후 제작이 지연될수록 비용이 불어나는 구조의 출발점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 루벤 마물리안이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19602건
  1. 영국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촬영 시작

    1960년 9월 28일 영국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본 촬영이 시작되었다. 초기 계획에는 상세한 확정 대본이 없었고, 세트 건설과 촬영이 동시에 진행되며 비용이 빠르게 늘었다. 영국의 날씨도 대규모 야외 장면 촬영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제작진은 곧 일정 지연과 건강 문제라는 이중 난관에 부딪혔다.

  2. 테일러 발병으로 제작 중단, 700만 달러 쓰고 쓸 만한 필름 10분

    테일러의 건강 악화로 촬영이 중단되었고, 그 시점까지 약 700만 달러가 쓰였지만 사용 가능한 영상은 10분 분량에 불과했다. 1961년 1월 18일 마물리안이 감독직을 사임했다. 제작사는 영국에서의 촬영을 접고 새 감독과 새 촬영지를 찾아야 했다. 이 중단은 폭스의 재정 부담을 크게 늘렸다.

19612건
  1. 조지프 맨키위츠 감독 영입, 촬영지를 로마 시네치타로 이전

    1961년 2월 조지프 L. 맨키위츠가 대본을 새로 쓰고 감독을 맡게 되면서 촬영지가 로마 시네치타 스튜디오로 옮겨졌다. 영국에서 지은 세트는 다시 지어야 했고, 같은 세트가 두 번 건설되는 비효율이 비용을 키웠다. 3월 4일에는 테일러가 폐렴으로 기관절개술을 받는 일이 있었다. 이 무렵부터 영화는 업계에서 '제작 지옥'의 대표 사례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2. 로마에서 촬영 재개, 리처드 버튼·렉스 해리슨 합류

    1961년 9월 25일 로마에서 촬영이 재개되었고 리처드 버튼이 안토니우스, 렉스 해리슨이 카이사르, 로디 맥도월이 옥타비아누스 역으로 새로 합류했다. 이전 캐스팅이 바뀌면서 기존 촬영분의 상당 부분이 쓸모없어졌다. 대본이 확정되지 않은 채 매일 장면을 수정해 촬영이 이어졌다. 이후 촬영 기간이 길어지면서 총비용은 계속 불어났다.

19623건
  1. 테일러-버튼 관계가 국제적 스캔들로, 바티칸 비판

    1962년 봄 촬영 중이던 테일러와 버튼의 관계가 국제적 스캔들로 번졌다. 두 사람 모두 당시 다른 배우자가 있었고, 바티칸 측은 테일러의 행동을 '에로틱한 방랑'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의 취재 경쟁이 촬영장 주변을 뒤덮었고 이 스캔들은 오히려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키우는 부수 효과를 낳았다. 한편 폭스 내부에서는 제작 지속 여부를 둘러싼 압박이 커졌다.

  2. 폭스 경영진 교체, 대릴 자누크가 스튜디오 사장으로 복귀

    1962년 6월 말 막대한 손실에 대한 책임 추궁 속에 스파이로스 스쿠라스가 20세기 폭스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어 7월 대릴 F. 자누크가 스튜디오 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제작 중단까지 검토되던 영화를 끝까지 완성하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자누크는 제작 상황을 직접 점검하며 영화의 마무리를 주도했다. 7월 28일에는 본 촬영이 종료되었다. 이 인사 교체는 이미 거액을 들인 영화를 포기할 수 없었던 폭스의 딜레마를 보여줬다.

  3. 자누크의 맨키위츠 해임과 12월 복귀

    1962년 10월 자누크가 러프 컷을 본 뒤 맨키위츠를 해임했고 테일러와 버튼이 공개적으로 맨키위츠를 옹호했다. 같은 해 12월 자누크는 맨키위츠를 대체할 수 없다는 판단 끝에 다시 불러들였다. 1963년 2~3월에는 스페인과 런던에서 추가 촬영이 이루어졌다. 편집 단계에서도 갈등이 이어지면서 개봉 일정은 거듭 조정되었다.

19631건
  1. 뉴욕 시사회와 최종 비용 정산, 제작비 3,110만 달러·총비용 4,400만 달러

    1963년 6월 12일 뉴욕 리볼리 극장에서 세계 시사회가 열렸지만 테일러와 버튼은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집계에 따르면 제작비는 3,110만 달러, 홍보·배급비를 포함한 총비용은 4,400만 달러였다. 영화는 그 해 북미 최고 흥행작이 되었음에도 막대한 비용 때문에 초기에는 손실을 기록했고 폭스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영화는 이후 할리우드 역사에서 제작비 초과의 대표적인 교훈으로 언급된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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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영화 '클레오파트라' 제작 파국, 감독 교체와 촬영지 이전으로 20세기 폭스 파산 위기 (1958~1963), 어떤 사건인가요?
200만 달러 규모로 시작한 영화 '클레오파트라'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병환, 감독 교체, 영국에서 로마로의 촬영지 이전과 세트 재건설, 테일러-버튼 스캔들을 거치며 총 4,400만 달러로 불어나 20세기 폭스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간 제작 참사.
영화 '클레오파트라' 제작 파국, 감독 교체와 촬영지 이전으로 20세기 폭스 파산 위기 (1958~1963), 언제 일어났나요?
1958부터 1963-06-12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제작 파국, 감독 교체와 촬영지 이전으로 20세기 폭스 파산 위기 (1958~1963),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63-06-12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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