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머만 전보 사건, 독일의 멕시코 동맹 제안 폭로와 미국의 1차 대전 참전
1917-01-16 — 191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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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17년 1월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멕시코에 미국과 전쟁 시 동맹을 맺으면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를 되찾도록 돕겠다고 제안한 암호 전보를 영국 해군 40호실이 해독해 3월 미국 언론에 공개되면서 미국 여론이 참전 쪽으로 돌아선 외교 사건이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17-01-16 ~ 1917-04-06
치머만, 미국 경유 외교 회선으로 멕시코 동맹 제안 전보 발송
독일 외무장관 아르투어 치머만은 1917년 1월 16일 워싱턴 주재 독일 대사 베른슈토르프를 거쳐 멕시코시티 주재 공사 에카르트에게 전달되도록 암호 전보를 보냈다. 전보는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전을 재개하면 미국이 참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미국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멕시코와 동맹을 맺어 자금 지원과 함께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 회복을 돕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멕시코가 일본의 동맹 참여를 중재해 주길 바란다는 요청도 담겨 있었다. 이 전보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정부가 호의로 허용한 외교 통신 경로를 이용해 전달되었다.
영국 해군 40호실, 전보 가로채 부분 해독
영국 해군 정보부 40호실은 독일의 외교 전문을 상시 감청하고 있었고 이 전보를 가로채 해독에 착수했다. 암호 해독 요원 니젤 드 그레이와 윌리엄 몽고메리 목사가 일부 내용을 풀어내면서 멕시코 동맹 제안이 드러났다. 영국은 이 정보를 곧바로 공개하면 자신들이 독일 외교 암호를 읽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된다고 우려해 활용 시점을 조율했다. 40호실의 해독은 이후 영국 정보 활동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독일, 2월 1일부터 무제한 잠수함전 재개 통보
독일은 1917년 1월 31일 미국에 다음 날부터 영국 해역에서 중립국 선박까지 무차별 공격하는 무제한 잠수함전을 재개한다고 통보했다. 이는 미국이 참전하기 전에 영국을 굴복시키겠다는 도박이었고, 치머만 전보도 이 결정이 가져올 위험에 대비한 보험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미국 내 개입 반대 여론은 여전히 강했지만 윌슨 대통령의 외교적 선택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이 선언이 미국과 독일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미국, 독일과 외교관계 단절
윌슨 대통령은 1917년 2월 3일 의회에서 독일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다고 발표했고 베른슈토르프 대사는 미국을 떠났다. 윌슨은 아직 전쟁 선포 대신 무장 중립과 상선 무장을 통한 대응을 모색했다. 그러나 독일 잠수함이 중립국 선박을 격침하는 사례가 늘면서 여론은 서서히 바뀌었다. 영국은 이런 흐름 속에서 치머만 전보를 미국에 넘길 최적의 시점을 기다렸다.
영국, 주영 미국대사 월터 페이지에 전보 전달
영국 외무부는 1917년 2월 24일 주영 미국대사 월터 하인스 페이지에게 해독한 치머만 전보 내용을 전달했다. 영국은 자신들이 독일 암호를 읽는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멕시코 전신국에서 입수한 사본으로 해독한 것처럼 설명했다. 이틀 뒤 윌슨 대통령이 이를 보고받았고 국무부는 전문의 진위를 확인했다. 이 전달은 미국이 독일의 적대 의도를 구체적 문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언론, 치머만 전보 일제 보도
1917년 3월 1일 AP통신 등 미국 언론이 치머만 전보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일부 평화주의자와 독일계 단체는 위조라고 주장했지만 반독일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멕시코가 미국 남서부 영토를 되찾도록 독일이 돕겠다는 제안은 특히 서부와 남부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이 보도는 개입 반대로 기울어 있던 여론의 균형을 허무는 결정적 계기로 꼽힌다.
치머만, 전보의 진위를 공개적으로 시인
치머만은 1917년 3월 3일 기자회견에서 전보가 진짜임을 시인했고, 3월 29일 제국의회에서도 이를 재확인했다. 위조설을 내세워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는 기대가 무너지면서 독일은 외교적으로 더욱 고립되었다. 한편 멕시코의 카란사 정부는 독일의 제안이 군사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4월 중순 공식적으로 거절했다. 치머만 본인의 시인은 영국의 은폐 전략이 성공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의회의 대독 선전포고, 미국 1차 대전 참전
윌슨 대통령은 4월 2일 의회에 대독 선전포고를 요청했고 상하원은 이를 승인해 4월 6일 미국이 공식 참전했다. 직접적 계기는 무제한 잠수함전과 미국 선박 피격이었지만, 치머만 전보는 여론을 돌려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의 참전은 서부전선 균형을 연합군 쪽으로 기울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사건은 암호 해독과 정보 공개가 국제 정치를 바꾼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치머만 전보 사건, 독일의 멕시코 동맹 제안 폭로와 미국의 1차 대전 참전, 어떤 사건인가요?
- 1917년 1월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멕시코에 미국과 전쟁 시 동맹을 맺으면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를 되찾도록 돕겠다고 제안한 암호 전보를 영국 해군 40호실이 해독해 3월 미국 언론에 공개되면서 미국 여론이 참전 쪽으로 돌아선 외교 사건이다.
- 치머만 전보 사건, 독일의 멕시코 동맹 제안 폭로와 미국의 1차 대전 참전, 언제 일어났나요?
- 1917-01-16부터 1917-04-06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치머만 전보 사건, 독일의 멕시코 동맹 제안 폭로와 미국의 1차 대전 참전,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17-04-06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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