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전쟁,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침공과 74일 만의 영국 탈환
1982-04-02 — 198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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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 군정이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하자 영국이 기동함대를 파견해 벨그라노호 격침, 셰필드호 피격, 산카를로스 상륙을 거쳐 6월 14일 항복을 받아낸 전쟁으로 아르헨티나 군정 붕괴로 이어졌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82-04-02 ~ 1982-06-17
아르헨티나군 '로사리오 작전'으로 포클랜드 제도 상륙
1982년 4월 2일 새벽 아르헨티나군이 '로사리오 작전'을 개시해 포트스탠리 인근에 상륙했다. 아르헨티나 측 알라라 해군 소장은 렉스 헌트 총독에게 평화적 항복을 요구했으나 거부됐고, 약 80명의 영국 해병대와 현지 주민 약 20명이 맞섰다. 오후에는 약 3000명의 아르헨티나군에 수적으로 압도되었다. 이날 전투에서 포클랜드 주민이나 해병이 사망하지는 않았다고 보도되었다. 갈티에리 장군이 이끄는 군사정권은 이 점령으로 국내 경제난과 억압 통치에 대한 비판을 애국심으로 돌리려 했다.
사우스조지아 섬 점령
아르헨티나군은 4월 3일 사우스조지아 섬도 점령했다. 이틀 만에 포클랜드의 수도 포트스탠리를 포함해 영국령 남대서양 영토의 핵심이 아르헨티나군 수중에 들어갔다. 영국 정부는 외교적 압박을 조직하면서 군사 대응을 준비했다. 이 시점부터 사태는 단순한 영유권 분쟁에서 본격적 군사 충돌로 번졌다.
대처 총리, 100척 규모 기동함대 파견
마거릿 대처 총리는 4월 5일 포클랜드를 되찾기 위한 기동함대를 파견했다. 함대는 존 필더하우스 제독이 지휘했고, 항공모함 허미스호와 인빈서블호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약 100척의 함선이 해병과 군 장비를 싣고 먼 남대서양으로 향했다. 이 파병 결정은 영국 정치에서 대처 총리의 가장 큰 도박으로 평가받았다.
영국 잠수함 컨커러호, 아르헨티나 순양함 벨그라노호 격침
5월 2일 영국 핵추진 잠수함 컨커러호가 어뢰 두 발로 아르헨티나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호를 공격해 약 45분 만에 침몰시켰다. 이 격침으로 승조원 323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전쟁 중 아르헨티나 전사자의 절반을 넘는 규모였다. 이후 아르헨티나 함대는 재래식 잠수함 산루이스호를 제외하고 모두 항구로 돌아가 전쟁 내내 출항하지 않았다. 다만 이 공격은 벨그라노호가 영국이 선포한 전쟁 구역 밖에 있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엑조세 미사일, 영국 구축함 셰필드호 피격
5월 4일 아르헨티나의 엑조세 미사일이 영국 구축함 셰필드호를 명중시켰다. 이는 벨그라노호 격침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보복적 성격의 공격이었고 영국 해군에 충격을 주었다. 영국 함대는 이후 공중 위협을 더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양측 모두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산카를로스 상륙, '폭탄 골목' 공중전
5월 21일 영국군은 산카를로스 만에 상륙하며 지상전을 개시했다. 5월 21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산카를로스 전투에서 아르헨티나 항공기와 영국 함정이 치열하게 맞붙었고 이 일대는 '폭탄 골목'으로 불렸다. 영국은 심각한 함정 손실과 피해를 입었지만 교두보를 확보하고 병력을 굳혔다. 이후 영국군은 섬을 가로질러 포트스탠리로 진격했다.
포트스탠리 아르헨티나군 항복, 74일 전쟁 종결
6월 14일 포트스탠리 주둔 아르헨티나군 사령관 마리오 메넨데스 장군이 제러미 무어 소장에게 항복했다. 대처 총리는 이날 밤 하원에서 항복 협상이 시작되었음을 발표해 전쟁 종결을 알렸다. 전쟁 전체 기간은 74일이었고 사망자는 아르헨티나군 약 650명, 영국군 255명, 포클랜드 주민 3명으로 집계된다. 영국은 섬을 되찾았고 대처 정부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강화되었다.
갈티에리 대통령 사임, 아르헨티나 군정 붕괴 가속
전쟁에서 패배한 뒤 레오폴도 갈티에리 대통령은 군부 내부에서 퇴진 압력을 받아 6월 17일 사임했다. 군사정권은 전쟁 패배로 정통성을 크게 잃었고 이후 민정 이양 절차가 가속되었다. 갈티에리는 후일 군사적 무능으로 처벌을 받았다. 이 전쟁은 아르헨티나 군정 종식과 영국 대처 정부의 재선 기반 마련이라는 정치적 결과를 낳았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포클랜드 전쟁,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침공과 74일 만의 영국 탈환, 어떤 사건인가요?
-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 군정이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하자 영국이 기동함대를 파견해 벨그라노호 격침, 셰필드호 피격, 산카를로스 상륙을 거쳐 6월 14일 항복을 받아낸 전쟁으로 아르헨티나 군정 붕괴로 이어졌다.
- 포클랜드 전쟁,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침공과 74일 만의 영국 탈환, 언제 일어났나요?
- 1982-04-02부터 1982-06-14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포클랜드 전쟁,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침공과 74일 만의 영국 탈환,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82-06-14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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