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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종결

짐바브웨 무가베 군사 쿠데타와 37년 철권통치 종식

2017-11-06 — 2017-11-24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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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부인 그레이스를 후계자로 세우려다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며 37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고 에머슨 음낭가과가 새 대통령에 올랐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2017-11-06 ~ 2019-09-06

20178
  1. 무가베, 음낭가과 부통령 전격 해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오랜 측근이던 에머슨 음낭가과 부통령을 전격 해임했다. 무가베의 부인 그레이스가 차기 대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잠재적 경쟁자인 음낭가과를 제거하려는 조치로 해석됐다. 음낭가과는 신변 위협을 느껴 곧바로 이웃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피신했다. 이 해임은 군부 내 음낭가과의 지지 세력을 자극해 집권 여당 ZANU-PF 내부 갈등을 폭발시켰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열흘 뒤 벌어질 군사 쿠데타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

  2. 치웽가 장군, 군 개입 경고

    국방군 총사령관 콘스탄티노 치웽가 장군이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여당 내 '숙청'을 멈추지 않으면 군이 개입할 수 있다고 공개 경고했다. 이는 무가베의 부인 그레이스 진영이 당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군부의 정면 반발이었다. 여당은 치웽가의 발언을 '반역적 행위'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이 경고는 실제로 이틀 뒤 벌어진 군사 개입의 신호탄이 되었다. 정치 관측통들은 이 시점부터 무가베 정권의 붕괴가 사실상 예고됐다고 평가한다.

  3. 군부, 하라레 장악·무가베 가택연금

    짐바브웨군이 새벽 국영 방송국을 점거하고 수도 하라레의 의회·정부청사 주변 도로를 봉쇄하며 사실상의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탱크가 대통령 관저와 의사당 주변을 에워쌌고 무가베 대통령과 부인 그레이스는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 군 대변인 모요 소장은 이를 쿠데타가 아니라 '악화하는 사회·경제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군은 무가베 측근인 재무장관 등을 체포해 부패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퍼레이션 회복 유산(Operation Restore Legacy)'으로 명명된 군사 개입의 시작이었다.

  4. 하라레서 수십만 명 반무가베 시위

    군의 개입 사흘 만에 하라레를 비롯한 전국 도시에서 독립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무가베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춤추고 노래했다. 시위대는 정부 청사 앞에 배치된 군인들을 얼싸안고 환호하는 등 군부의 개입을 사실상 지지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이는 37년 철권통치에 대한 대중의 누적된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된 장면으로 기록됐다. 시위 규모는 이후 여당의 무가베 축출 결정에 결정적 압박으로 작용했다.

  5. ZANU-PF, 무가베 당대표 해임·탄핵 착수

    집권여당 ZANU-PF 중앙위원회가 로버트 무가베를 당대표직에서 전격 해임하고 에머슨 음낭가과를 새 당대표로 선출했다. 당은 무가베에게 다음날 정오까지 대통령직에서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의회 탄핵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이날 저녁 전국에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무가베는 예상을 깨고 사퇴를 언급하지 않아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의회는 실제로 탄핵소추안 작성에 착수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무가베의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6. 무가베, 결국 사임…37년 집권 종료

    탄핵안이 상정된 의회에서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서면 사임서가 낭독되자 의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1980년 독립 이후 37년간 짐바브웨를 통치해온 무가베는 이로써 권좌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는 사임서에서 자발적으로 물러난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군부·여당·거리 시위라는 삼중 압박에 굴복한 결과였다. 무가베 부부는 이후 소추 없이 국내 거주와 신변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임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지도자 중 한 명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7. 음낭가과, 새 대통령 취임

    에머슨 음낭가과 전 부통령이 짐바브웨의 새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며 '악어'라는 별명답게 정치적 반전을 완성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경제 재건과 국제사회와의 관계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새로운 짐바브웨를 약속했다. 불과 2주 전 무가베에 의해 해임돼 국외로 피신했던 그가 군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최고 권력에 오른 것은 극적인 반전이었다. 야권과 일부 시민사회는 군부가 여전히 권력의 실세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의 취임으로 오퍼레이션 회복 유산으로 불린 군사 개입은 사실상의 정권 교체로 마무리됐다.

  8. 군, '회복 유산' 작전 공식 종료 선언

    짐바브웨 군 당국이 무가베 축출로 이어진 군사작전 '오퍼레이션 회복 유산'의 공식 종료를 선언했다. 군은 거리에 배치했던 병력을 철수시키고 국가 운영을 문민 정부에 넘기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이번 작전은 명목상 '유혈 없는 이양'으로 포장됐지만 실질적으로는 명백한 군사 쿠데타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국제사회는 이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할지를 놓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는데, 이는 쿠데타로 결론지을 경우 짐바브웨에 제재를 가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이로써 2주에 걸친 정치적 격변은 공식적으로 일단락됐다.

20191
  1. 무가베, 싱가포르서 향년 95세로 별세

    권좌에서 물러난 지 약 2년 만에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이 평소 치료를 받던 싱가포르의 한 병원에서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에머슨 음낭가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의 죽음을 직접 알렸다. 무가베는 반식민 투쟁의 영웅으로 출발했으나 장기 철권통치 기간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었다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로 남았다. 그의 사망 이후 유해 안장 방식과 장례 절차를 둘러싸고 정부와 유족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짐바브웨 현대사에서 한 시대가 완전히 마감됐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3. 같이 보기[편집]

분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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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짐바브웨 무가베 군사 쿠데타와 37년 철권통치 종식, 어떤 사건인가요?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부인 그레이스를 후계자로 세우려다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며 37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고 에머슨 음낭가과가 새 대통령에 올랐다.
짐바브웨 무가베 군사 쿠데타와 37년 철권통치 종식, 언제 일어났나요?
2017-11-06부터 2017-11-24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짐바브웨 무가베 군사 쿠데타와 37년 철권통치 종식,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17-11-24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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