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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외교종결

1956년 수에즈 위기, 이집트의 운하 국유화와 영·프·이스라엘 침공

1956-07-26 — 1957-04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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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56년 7월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 회사를 국유화하자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비밀 합의 끝에 이집트를 침공했으나 미국과 소련, 유엔의 압력으로 철수했고 이든 영국 총리가 사임한 중동·냉전사의 전환점이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56-07-19 ~ 1957-01-09

19567건
  1. 미국, 아스완 하이댐 자금 지원 철회

    1956년 7월 19일 미국은 이집트의 아스완 하이댐 건설 차관 지원을 철회한다고 통보했고 영국도 이튿날 뒤따랐다. 이집트가 공산권과 무기 거래를 하고 중국을 승인한 것에 대한 불만이 배경이었다. 나세르 대통령은 이 조치를 공개적 모욕으로 받아들였고 댐 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는 곧바로 수에즈 운하 문제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됐다. 서방은 이집트가 이를 어떻게 받아칠지 예상하지 못했다.

  2. 나세르, 수에즈 운하 회사 국유화 선언

    1956년 7월 26일 나세르는 알렉산드리아 연설에서 영국·프랑스 자본이 지배하던 수에즈 운하 회사를 국유화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통행료 수입을 하이댐 건설 비용에 쓰겠다고 밝혔고 운하는 이집트 영토에 있는 이집트의 자산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석유 수송의 핵심 통로를 잃는다고 보았고 프랑스는 알제리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나세르를 제거하길 원했다. 이든 총리는 이집트에 무력으로 대응할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제 회의와 외교 협상이 이어졌지만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3. 세브르 의정서, 영·프·이스라엘 비밀 공모

    1956년 10월 22~24일 프랑스 세브르 근교에서 영국·프랑스·이스라엘 대표가 비밀 회담을 열고 이스라엘이 시나이를 침공하면 영·프가 운하 보호를 구실로 개입한다는 합의를 만들었다. 합의 문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영국 정부는 한동안 사전 공모를 부인했다. 나중에 문서와 증언이 공개되며 이든 정부가 의회에 거짓 해명을 했다는 비판이 커졌다. 이 합의는 국제 규범과 동맹국 미국에 대한 배신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사전 협의를 받지 못했다.

  4. 이스라엘, 시나이반도 침공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군이 시나이반도를 침공해 이집트군을 밀어붙였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해상 봉쇄와 팔레스타인 게릴라 침투를 이유로 들었다. 작전은 수일 만에 시나이 대부분을 장악하는 성과를 냈다. 이는 세브르 합의의 1단계로, 영·프가 개입할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동맹국들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5. 영·프 최후통첩과 이집트 거부

    1956년 10월 30일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양측이 운하에서 16km 뒤로 물러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이집트는 자국 영토에서 물러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 거부를 구실로 영·프는 이집트 공군기지 폭격을 개시했다. 같은 시기 헝가리에서는 소련군이 봉기를 무력 진압하고 있어 국제 여론이 동시에 악화됐다. 이든 정부는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았다.

  6. 유엔총회, 즉각 휴전과 철수 결의

    1956년 11월 2일 유엔총회는 즉각적인 휴전과 외국군 철수를 촉구하는 결의를 압도적으로 채택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총회에서 고립됐다. 미국은 영국 파운드화 하락과 석유 문제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고 소련은 영·프에 대한 군사적 위협성 발언을 했다. 캐나다 외무장관 레스터 피어슨은 유엔 평화유지군 구상을 내놓았다. 이 구상은 곧 유엔긴급군(UNEF) 창설로 이어졌다.

  7. 포트사이드 공수 상륙과 휴전 선언

    1956년 11월 5~6일 영국·프랑스 공수부대와 해병이 포트사이드와 포트푸아드에 상륙했다. 그러나 국제적 압박과 재정 위기 속에서 이든 총리는 11월 6일 휴전을 발표했다. 이집트는 운하에 선박을 가라앉혀 통행을 차단했고 운하는 한동안 통행이 불가능했다. 영국 내에서는 정부의 거짓말과 전쟁 결정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침공은 군사적으로는 진전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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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든 총리 사임과 영·프 군 철수

    유엔긴급군이 11월 중순부터 이집트에 도착하는 가운데 영국·프랑스군은 1956년 12월 22일까지 철수를 완료했다. 건강 악화와 정치적 책임이 겹친 앤서니 이든 총리는 1957년 1월 9일 사임했고 해럴드 맥밀런이 후임이 됐다. 이스라엘은 1957년 3월까지 시나이에서 철수했고 운하는 4월에 재개통됐다. 이 사건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 영향력이 한계를 드러냈고 미국과 소련이 중동 질서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나세르는 군사적으로는 패했으나 정치적으로 아랍 민족주의의 영웅이 됐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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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1956년 수에즈 위기, 이집트의 운하 국유화와 영·프·이스라엘 침공, 어떤 사건인가요?
1956년 7월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 회사를 국유화하자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비밀 합의 끝에 이집트를 침공했으나 미국과 소련, 유엔의 압력으로 철수했고 이든 영국 총리가 사임한 중동·냉전사의 전환점이다.
1956년 수에즈 위기, 이집트의 운하 국유화와 영·프·이스라엘 침공, 언제 일어났나요?
1956-07-26부터 1957-04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이집트의 운하 국유화와 영·프·이스라엘 침공,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57-04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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