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
2024-11-27 — 2025-03-13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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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24년 11월 말 HTS 주도 반군의 기습 공세로 열흘 만에 다마스쿠스가 함락되며 53년간 이어진 아사드 부자 독재가 종식되고 이슬람주의 과도정부가 들어선 사건.
2. 전개 과정[편집]
10개 기록 · 2024-11-27 ~ 2025-12-08
HTS 주도 반군, 시리아 북서부 기습 공세 개시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국민군(SNA)과 연합해 시리아 북서부 정부군 진지에 대한 대규모 기습 공세를 개시했다. 수년간 소강상태였던 시리아 내전 전선에서 반군이 갑작스럽게 대규모 작전을 재개하면서 국제사회가 크게 술렁였다. 반군은 개전 며칠 만에 시리아 제2도시 알레포 외곽까지 진격하며 정부군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러시아·이란·헤즈볼라의 지원을 받아온 정부군은 예상 밖으로 급속히 붕괴 조짐을 보였다. 이 기습 공세는 이후 열흘 만에 정권이 무너지는 전격전의 시작점이 됐다.
하마·홈스 함락, 반군 파죽지세 남하
반군 연합은 알레포 점령에 이어 하마와 홈스 등 주요 도시들로 파죽지세로 진격하며 여러 마을을 잇달아 점령했다. 정부군은 조직적인 저항을 하지 못한 채 곳곳에서 무기를 버리고 퇴각하거나 투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홈스는 다마스쿠스로 향하는 전략적 교통 요충지여서 이 도시의 함락은 정권의 수도 방어선이 사실상 무너졌음을 의미했다. 시리아 정부는 뒤늦게 병력을 재편성하려 했지만 이미 전선 전체가 붕괴되는 상황을 되돌리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아사드 정권의 급속한 몰락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반군, 다마스쿠스 외곽 진입
반군 연합인 '남부 작전실'이 시리아 자유군과 함께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까지 진입하며 정권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아사드 대통령과 측근들의 소재가 불분명해졌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정부 관료들과 군 지휘부의 이탈이 속출했다. 다마스쿠스 시내에서는 주민들이 불안 속에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국경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러시아와 이란은 아사드 정권을 구제할 뚜렷한 군사적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사실상 정권의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지기 직전 상황이었다.
다마스쿠스 함락, 아사드 러시아로 전격 망명
반군 연합군이 12월 8일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키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완전히 붕괴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반군이 자신을 찾기 시작하자 항공편으로 수도를 탈출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망명했다. 러시아 국영 언론은 아사드와 그 가족이 망명을 허가받았다고 보도했고, 크렘린 대변인은 이튿날 푸틴 대통령이 이를 개인적으로 승인했다고 확인했다. 이로써 1971년 하페즈 알아사드 집권 이후 53년간 이어진 아사드 가문의 세습 독재가 종말을 맞았다. 다마스쿠스 시내에서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아사드 동상을 무너뜨리며 정권 붕괴를 자축했다.
무함마드 알바시르, 과도정부 총리로 임명
시리아 반군 총사령부는 시리아구원정부(SSG) 개발장관 출신인 무함마드 알바시르를 과도정부 총리로 공식 임명했다. 이들리브 출신인 알바시르는 알레포대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반군 행정조직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인물이었다. 다마스쿠스 함락 당일 퇴임한 바트당 정권의 마지막 총리 무함마드 가지 알잘랄리는 권력 이양 과정에 협조하며 과도정부 구성을 지원했다. 알바시르 정부는 국제사회를 향해 온건 노선과 포용적 통치를 약속하며 'HTS=테러단체'라는 낙인을 벗으려 애썼다. 이는 반세기 만에 시리아 권력구조가 전면 교체되는 상징적 조치였다.
알샤라, 시리아 혁명승리회의서 과도대통령 추대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시리아 혁명승리회의'에서 시리아 총사령부는 HTS 지도자 아흐마드 알샤라(별칭 알졸라니)를 과도기 대통령으로 공식 추대했다. 알샤라는 아사드 정권 붕괴 직후부터 사실상의 최고 실권자로 활동해 왔으며 이번 추대로 지위가 공식화됐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모든 무장세력의 국가 군대 통합과 헌법 제정 절차 착수를 약속했다. 서방 국가들은 과거 알카에다 연계 조직을 이끈 그의 이력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새 정부와의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기 시작했다. 시리아의 향후 정치 체제와 소수민족·종파 간 권력 배분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해안지역 알라위파 대상 보복 학살, 최소 1500명 사망
라타키야 등 시리아 서부 해안 지역에서 아사드 정권 잔당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과도정부군과 연계된 무장세력이 알라위파 마을을 조직적으로 공격했다. 로이터통신의 심층 취재에 따르면 사흘간 최소 1500명의 알라위파 민간인이 학살당했으며 인권단체들은 이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보고했다. 학살과 약탈, 방화가 40여 개 마을과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고 가해 조직의 지휘 체계가 다마스쿠스 과도정부 핵심 인사들까지 연결된 정황이 드러났다. 이는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벌어진 최악의 유혈 사태로 기록되며 알샤라 과도정부의 통제력과 소수 종파 보호 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키웠다. 유엔은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다수 국가가 우려 성명을 발표했다.
과도헌법 선언 서명, 알샤라 5년 과도기 행정권 장악
알샤라 과도대통령은 새로운 헌법 제정 전까지 적용될 과도헌법 선언에 서명하며 5년간의 과도기 동안 광범위한 행정 권한을 부여받았다. 선언문은 이슬람 율법을 입법의 주요 원천으로 명시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여성 권리 등 기본권 조항을 포함해 논란과 기대를 동시에 낳았다. 소수 종파와 쿠르드 세력 등은 권력 집중과 대표성 부족을 우려하며 선언 절차에 반발했다. 국제사회는 시리아의 정치적 안정과 포용적 이행 여부를 예의주시했다. 이 헌법 선언은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시리아 새 정치체제의 법적 골격을 마련한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시리아 제재 전면 해제 발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순방 중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전면 해제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후 미 재무부는 에너지·통신·의료·교육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시리아 사업 참여를 허용하는 일반 허가를 발급했다. 이는 아사드 정권 시절 부과됐던 각종 경제 제재로 고립됐던 시리아 경제의 재건 가능성을 여는 조치로 평가됐다. 알샤라 과도정부는 이를 국제사회 복귀와 재건 자금 유치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반겼다. 다만 인권단체들은 3월 알라위파 학살 등 과도정부의 통치 실태에 대한 검증 없이 제재가 해제됐다는 점을 우려했다.
정권 붕괴 1주년, 난민 100만 명 이상 귀환
아사드 정권 붕괴 1주년을 맞아 국제사회는 지난 1년간의 성과와 과제를 점검했다. 유엔에 따르면 정권 붕괴 이후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시리아로 귀환했고 국내에서도 약 200만 명이 원래 거주지로 돌아갔다. 이란의 헤즈볼라 지원 통로가 끊기고 러시아의 군사거점 입지도 크게 흔들리는 등 지역 세력균형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알라위파 학살 미해결, 종파 간 긴장, 경제 재건 지연 등 과도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한 상태였다. 유엔은 '자유롭고 주권을 가진 통합된 시리아'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속적 지원을 촉구했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 어떤 사건인가요?
- 2024년 11월 말 HTS 주도 반군의 기습 공세로 열흘 만에 다마스쿠스가 함락되며 53년간 이어진 아사드 부자 독재가 종식되고 이슬람주의 과도정부가 들어선 사건.
-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 언제 일어났나요?
- 2024-11-27부터 2025-03-13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2025-03-13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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