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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종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

2009-04-07 — 2009-05-29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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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서거한 사건.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은 검찰 수사 방식과 언론 보도 논란을 낳으며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2. 전개 과정[편집]

10개 기록 · 2009-04-07 ~ 2009-05-29

  1. 박연차 게이트 수사 본격화

    검찰은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박 회장은 사업상 특혜를 노리고 여야 정치인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에게 뇌물성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를 지휘하면서 정관계 인사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3월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의 체포를 시작으로 수사망이 좁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도 수사 대상에 오르며 사건은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2. 노 전 대통령 일가로 향한 수사

    검찰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 아들 노건호씨 등 일가로 확대됐다.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640만 달러의 성격이 핵심 쟁점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권 여사를 부산지검으로 불러 조사했다. 전직 대통령 일가를 겨냥한 수사가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노 전 대통령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3. 검찰 서면질의서 수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22일 자신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서면질의서를 받았다. 그는 25일 답변서를 제출했으며 곧이어 검찰의 소환이 임박했음을 예감했다. 전직 대통령이 뇌물 수수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초유의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미안함을 표하며 침통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봉하마을에는 취재진과 지지자들이 몰려들며 긴장이 고조됐다.

  4. 대검찰청 출두와 13시간 조사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오전 봉하마을을 떠나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했다. 그는 포토라인에 서서 국민에게 면목이 없다는 취지로 짧게 심경을 밝힌 뒤 조사실로 향했다. 오후 1시 20분부터 밤 11시 20분 무렵까지 약 열 시간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이 뇌물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헌정사 초유의 장면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5월 1일 새벽에야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5. '논두렁 시계' 보도 논란

    검찰 조사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에게서 받은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취지의 보도가 나오며 파문이 일었다. 이 보도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망신주기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훗날 국가정보원 등이 개입한 여론전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렸다는 '피의사실 공표' 논란도 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러한 보도에 극심한 모욕감과 압박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방식과 언론 보도 윤리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6.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투신

    2009년 5월 23일 이른 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호관과 함께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 올랐다가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 그는 곧바로 인근 병원을 거쳐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중 끝내 서거했다. 향년 63세였다.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은 속보로 전해지며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봉하마을과 전국 곳곳에서 비통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7.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유서 공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당일 새벽 사저 컴퓨터로 짧은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문구가 담겼다. 유서는 남은 이들에게 미안함과 담담한 심경을 전하는 내용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화장해 달라는 뜻과 작은 비석 하나만 세우라는 당부도 남겼다. 이 유서는 서거의 상징적 기록으로 남았다.

  8. 검찰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 종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그를 상대로 한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피의자 사망으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한 수사와 피의사실 공표가 비극을 불렀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 책임론이 제기됐고 수사를 지휘한 임채진 검찰총장은 결국 사퇴했다. 전직 대통령을 겨눈 수사의 정당성과 절제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9. 봉하마을 조문 행렬과 전국 분향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봉하마을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조문객으로 긴 행렬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밤을 새워 줄을 서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서울시청 앞 대한문을 비롯해 전국에 시민 분향소가 자발적으로 설치됐다. 국민장 장의위원회 추산 전국 335곳 분향소에 약 500만 명의 조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애도의 물결은 정파를 넘어 확산되며 추모 열기가 뜨겁게 타올랐다.

  10. 국민장 영결식과 봉하마을 안장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은 경복궁 앞뜰에서 거행됐고 서울광장에서는 대규모 노제가 열려 수많은 시민이 운구 행렬을 배웅했다. 유해는 화장돼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돌아와 안장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지에 따라 사저 인근에 작은 너럭바위 형태의 소박한 묘역이 조성됐다. 7일간의 국민장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추모 물결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3. 같이 보기[편집]

분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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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 어떤 사건인가요?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서거한 사건.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은 검찰 수사 방식과 언론 보도 논란을 낳으며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 언제 일어났나요?
2009-04-07부터 2009-05-29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09-05-29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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