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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도시종결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암매장 사건

1991-03-26 — 2006-03-25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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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1년 대구 성서 지역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잡으러 와룡산에 올랐다가 집단 실종된 뒤 11년 6개월 만에 유골로 발견된 사건으로, 타살 정황에도 범인을 찾지 못한 대표적 장기 미제사건이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91-03-26 ~ 2011-03

19914
  1. 성서 초등학생 5명 집단 실종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성서 지역에 살던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인근 와룡산에 오른 뒤 함께 사라졌다. 우철원·조호연·김영규·박찬인·김종식 군으로, 당시 초등학교 3~6학년이었다. 이날은 기초의회 선거일로 임시공휴일이어서 아이들이 함께 산에 갈 수 있었다. '아빠, 도롱뇽 알 찾아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이들은 그날 밤이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2. 대대적 수색 작전 개시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의 신고로 대규모 수색이 시작됐다. 경찰과 군, 예비군, 주민까지 동원돼 와룡산과 인근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수색에는 연인원 수십만 명이 투입됐으며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였다. 대통령까지 나서 특별 지시를 내릴 만큼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그러나 다섯 아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3. '개구리소년' 찾기 전국 캠페인

    실종 아동들은 '개구리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전국적 관심을 모았다. 아이들의 얼굴을 담은 전단이 거리에 뿌려지고 과자 봉지와 방송을 통해 실종 사실이 알려졌다. 미아 찾기 캠페인이 사회 운동으로 번졌고 실종 아동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전국에서 제보가 잇따랐지만 결정적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부모들은 전국을 돌며 아이들을 찾아 헤맸다.

  4. 무성한 제보와 수사 혼선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각종 무속인의 예언과 근거 없는 제보가 난무해 수사에 혼선을 빚었다. 일부 수사기관은 실종 아동의 부모를 의심해 집을 파헤치는 등 인권 침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목격담과 첩보를 좇아 전국을 수색했지만 번번이 헛수고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단서는 사라지고 사건은 미제로 굳어져 갔다. 가족들의 고통은 깊어만 갔다.

20023
  1. 와룡산에서 유골 발견

    실종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와룡산 중턱에서 다섯 아이의 유골이 발견됐다.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올랐던 시민이 뼈를 발견해 신고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현장에서는 아이들의 신발 다섯 켤레와 유골이 함께 수습됐다. 실종된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오랜 세월 애타게 찾던 아이들이 백골이 되어 돌아온 순간이었다.

  2. 법의학팀 '타살' 잠정 결론

    경북대학교 법의학팀은 발견된 유골을 정밀 감정한 결과 세 아이의 두개골에서 예리한 물체에 의한 손상 흔적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자연사가 아닌 타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살해된 뒤 그 자리에 묻혔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단순 조난·저체온사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사건은 실종에서 살인 사건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3. 사인 놓고 논란 지속

    유골 감정 결과를 두고 사망 원인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두개골 손상이 타살의 증거라는 견해와, 산에서 조난돼 저체온으로 숨진 뒤 훼손됐을 수 있다는 견해가 맞섰다. 오랜 세월이 지나 물증이 부족한 탓에 사인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웠다. 결정적 증거와 목격자가 없어 수사는 다시 벽에 부딪혔다. 유족들은 진실 규명을 강력히 요구했다.

20061
  1. 공소시효 만료로 미제사건 확정

    2006년 3월 25일 살인죄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유골 발견 이후에도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처벌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실종부터 시효 만료까지 15년 동안 사건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시효 폐지를 호소했으나 소급 적용되지 못했다. 다섯 가족의 상처는 그대로 남았다.

20111
  1. 3대 미제사건으로 남은 상흔

    개구리소년 사건은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더불어 한국의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린다. 사건은 실종 아동과 공소시효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크게 높였다. 2011년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아이들'이 개봉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재수사와 공소시효 폐지 논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족과 시민들은 지금도 진실 규명을 바라고 있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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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암매장 사건, 어떤 사건인가요?
1991년 대구 성서 지역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잡으러 와룡산에 올랐다가 집단 실종된 뒤 11년 6개월 만에 유골로 발견된 사건으로, 타살 정황에도 범인을 찾지 못한 대표적 장기 미제사건이다.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암매장 사건, 언제 일어났나요?
1991-03-26부터 2006-03-25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암매장 사건,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06-03-25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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