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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웬즈데이, 영국 ERM 탈퇴와 파운드화 위기(1992)

1990-10-08 — 2005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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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2년 9월 16일 영국이 투기 매도를 막지 못해 유럽환율조정장치(ERM)에서 전격 탈퇴한 사건. 영란은행은 하루 금리를 두 번 올리며 파운드를 사들였지만 실패했고 수십억 파운드 손실, 소로스의 10억 파운드 수익, 보수당 신뢰 붕괴로 이어졌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90-10-08 ~ 1997

19901건
  1. 영국, 마르크당 2.95파운드로 ERM 가입

    1990년 10월 8일 영국은 파운드를 독일 마르크당 2.95 비율로 유럽환율조정장치(ERM)에 가입시켰고 하한선은 2.773마르크였다. ERM은 회원국 환율을 일정 범위 안에 묶어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수출 환경을 안정시키려는 제도였다. 영국은 파운드가 고평가되었다는 우려에도 환율 규율로 물가를 잡는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환율을 묶어 둔 상태에서 독일과 영국의 경제 사정이 달라지면 금리 정책이 엇갈릴 위험이 컸다. 이 구조적 긴장이 2년 뒤 위기의 토대가 되었다.

19926건
  1. 소로스 등 투기 세력의 파운드 매도 포지션 구축

    1992년 89월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파운드가 ERM 하한을 지키기 어렵다고 보고 대규모 매도 포지션을 쌓았다. 영국은 199192년 불황으로 성장이 둔화되고 집값이 하락하며 주택 압류가 늘어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높여 파운드를 방어하는 것은 국내 경제에 부담이었다. 투기 세력은 그 정책 딜레마를 노렸다. 독일이 다른 회원국을 위해 금리를 내려줄 가능성도 낮다고 평가되었다.

  2. 분데스방크 총재 발언이 시장 불안 촉발

    9월 15일 화요일 저녁, 헬무트 슐레징거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가 통화 재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언론에 퍼졌다. 이 발언은 독일이 영국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 읽혔다. 파운드에 대한 매도 압력은 즉시 높아졌고 영란은행은 개입 태세에 들어갔다. 독일 중앙은행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실해지자 영국은 사실상 홀로 시장에 맞서는 처지가 되었다. 이 밤의 분위기가 다음 날의 붕괴로 이어졌다.

  3. 하루에 두 차례 금리 인상, 한때 15% 예고

    9월 16일 아침 시장이 열리자 파운드 투매가 몰렸고 영란은행 관계자들은 시간당 약 20억 파운드의 파운드화를 사들였다. 오전 10시 30분께 기준금리는 10퍼센트에서 12퍼센트로 올랐다. 이어 정부는 15퍼센트까지 추가 인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투기 매도는 멈추지 않았다. 재무부는 이 방어에 총 270억 파운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자의 부담이 커지는 점도 정부의 부담이었다.

  4. 러몬트 재무장관, ERM 탈퇴 선언

    그날 저녁 7시 40분 노먼 러몬트 재무장관은 텔레비전 연설로 영국이 ERM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하루 종일 파운드를 방어하려 했지만 최저 한도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영란은행은 외환보유고의 상당 부분을 쏟아부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리실은 러몬트 장관이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날은 이후 블랙 웬즈데이로 불리게 되었다.

  5. 금리 10%로 환원, 파운드 변동환율 전환

    ERM 탈퇴 다음 날 영국 금리는 다시 10퍼센트로 돌아갔고 15퍼센트 인상 방침도 철회되었다. 파운드는 변동환율로 놓이며 가치가 떨어졌지만 정부는 금리를 낮출 여지를 얻었다. 이후 영국은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채택해 물가를 관리했다. 이 체제는 1990년대부터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낮은 물가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탈퇴는 유로 가입을 정치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효과도 낳았다.

  6. 보수당 지지율 급락과 소로스의 10억 파운드 수익

    사건 직후 9~10월 보수당 지지율은 43퍼센트에서 29퍼센트로 곤두박질쳤다. 4월 총선에서 이긴 정부의 경제 운영 능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소로스는 파운드 매도로 10억 파운드가 넘는 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재무부 분석으로는 보유고를 지켰다면 24억 파운드의 이익이 가능했다는 계산도 있다. 주택 소유를 장려한 대처식 정책의 신봉자들은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19971건
  1. 재무부, 방어 비용 31억 4천만 파운드로 공식 추산

    1997년 영국 재무부는 블랙 웬즈데이 방어 비용을 31억 4천만 파운드로 공식 추산했다. 2005년 비밀 해제된 문서 등을 거쳐 이 추정치는 33억 파운드로 수정되었다. 경제 전문 해설들은 약 34억 파운드의 손실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보수당은 1997년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압승을 내주고 정권을 잃었고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 때에야 복귀했다. 블랙 웬즈데이는 시장이 정부 정책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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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블랙 웬즈데이, 영국 ERM 탈퇴와 파운드화 위기(1992), 어떤 사건인가요?
1992년 9월 16일 영국이 투기 매도를 막지 못해 유럽환율조정장치(ERM)에서 전격 탈퇴한 사건. 영란은행은 하루 금리를 두 번 올리며 파운드를 사들였지만 실패했고 수십억 파운드 손실, 소로스의 10억 파운드 수익, 보수당 신뢰 붕괴로 이어졌다.
블랙 웬즈데이, 영국 ERM 탈퇴와 파운드화 위기(1992), 언제 일어났나요?
1990-10-08부터 2005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블랙 웬즈데이, 영국 ERM 탈퇴와 파운드화 위기(1992),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05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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