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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몬 브라더스 미 국채 입찰 부정 스캔들과 버핏의 회사 구원(1991)

1991-02-21 — 1993-12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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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1년 8월 살로몬 브라더스가 폴 모저의 허위 명의 입찰로 미 재무부 국채 경매의 35% 한도를 위반해 온 사실을 시인하면서 거트프렌드 회장 등이 사임하고 워런 버핏이 임시 회장을 맡았으며, 회사는 2억 9천만 달러를 물어낸 월가의 대형 규제 스캔들이다.

2. 전개 과정[편집]

10개 기록 · 1991-02-21 ~ 1993-12

19916건
  1. 폴 모저, 고객 명의 도용해 5년물 국채 입찰

    1991년 2월 21일 살로몬 브라더스 정부채 트레이딩 데스크 책임자 폴 모저는 미 재무부의 5년 만기 국채 경매에서 워버그 자산운용과 퀀텀 펀드를 입찰자로 허위 기재해 63억 달러 규모의 입찰을 넣었다. 실제 입찰자는 살로몬 자신이었다. 당시 재무부 규정은 한 입찰자가 경매 물량의 35%를 넘게 살 수 없도록 제한했는데, 모저와 토머스 머피는 이 한도를 피하려 고객 계좌를 무단으로 이용했다. 위키백과와 수사 기록에 따르면 1990년 12월 4년물 국채 경매에서도 같은 수법이 쓰였다. 시장 매집을 노린 이 방식은 국채 시장의 공정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행위였다.

  2. 경영진, 위반 사실 보고받고도 즉각 조치 안 해

    살로몬 경영진은 모저의 위반 사실을 1991년 봄께 보고받았지만 즉각 그를 정직시키거나 재무부에 알리지 않았다. 존 거트프렌드 회장은 이 사실을 알고도 신속히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후 비판의 중심에 섰다. 위키백과 존 거트프렌드 항목은 그가 모저를 곧바로 정직시키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이 지연은 이후 규제 당국이 회사의 기본 감독 체계와 법 준수 의지를 문제 삼는 핵심 근거가 되었다. 결국 경영진의 은폐 의혹과 늑장 대응이 단순 트레이더 일탈을 회사 전체의 존폐 위기로 키웠다.

  3. 살로몬, 불법 입찰 사실 공개

    1991년 8월 9일 살로몬 브라더스는 재무부 국채 경매에서 규정을 위반해 고객 명의로 무단 입찰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발표는 월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살로몬은 1989년 8월부터 1991년 5월 사이 허위 입찰이 있었다고 인정하게 된다. 이 공개는 재무부, SEC, 의회 등 다수 기관의 조사로 이어지는 출발점이었다. 월가 최고 채권 트레이딩 회사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4. 거트프렌드 등 최고 경영진 사임, 버핏이 임시 회장 취임

    1991년 8월 중순 존 거트프렌드 회장, 토머스 스트라우스 사장, 존 메리웨더 부회장이 사임을 발표했다. 살로몬 지분 약 16%를 가진 최대 투자자 워런 버핏은 회사를 지키기 위해 임시 회장 겸 CEO를 맡았다.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7억 달러 규모의 우선주를 보유하고 있었고, 회사 파산 가능성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는 이후 데릭 모건(Deryck Maughan)을 회장에 앉히며 경영을 안정시켰다. 이 사건은 버핏이 월가의 위기 수습자로 대중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5. 재무부, 국채 입찰 참여 금지 발표 후 몇 시간 만에 완화

    1991년 8월 18일 미 재무부는 살로몬 브라더스의 국채 경매 참여를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살로몬은 사실상 파산에 이를 수 있었고 시장 전체에 충격을 줄 우려가 컸다. 버핏이 니컬러스 브래디 재무장관에게 직접 호소하자 재무부는 조치를 수정해 고객을 대신한 입찰은 허용했다. 이는 대형 금융사 붕괴가 시장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 규제 당국의 절충이었다. 사건은 '대마불사' 논쟁의 선례로도 기억된다.

  6. SEC·NASD·NYSE·의회 3개 위원회, 33개 주 동시 조사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991년 9월 살로몬이 SEC, NASD, NYSE, 최소 3개 의회 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33개 주 규제 당국도 살로몬의 영업 면허 유지 여부를 검토했다. 이 사건 여파로 재무부 경매를 자동 입찰 시스템으로 바꾸는 방안과 낮은 입찰가 방식에서 단일가격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살로몬은 인수 업무를 잃고 민간 차입도 어려워져 보유 자산 일부를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골드만삭스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었다.

19922건
  1. 살로몬, 총 2억 9천만 달러 벌금·배상 합의

    1992년 살로몬 브라더스는 정부와 합의해 벌금과 배상금으로 총 2억 9천만 달러를 내기로 했다. 위키백과는 이를 1억 9천만 달러의 벌금과 1억 달러의 보상 기금으로 설명한다. 회사는 혐의를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 조건이었다. 이는 당시 월가 증권사에 부과된 사상 최대급 규모의 제재 중 하나였다. 이 합의로 회사의 법적 부담은 정리됐지만 평판 손상은 오래갔다.

  2. SEC, 거트프렌드·스트라우스·메리웨더와 합의

    1992년 12월 3일 SEC는 거트프렌드에게 10만 달러 민사 벌금과 증권사 대표직 평생 금지를, 토머스 스트라우스에게 7만 5천 달러 벌금과 6개월 업계 정지를, 존 메리웨더에게 5만 달러 벌금과 3개월 정지를 부과하는 합의를 발표했다. SEC는 별도로 폴 모저와 토머스 머피를 1989년 8월부터 1991년 5월까지 허위 입찰을 제출한 혐의로 제소했다. 거트프렌드는 SEC가 자신의 부정행위를 확인한 것은 아니라면서도 1991년 8월 사임 때와 마찬가지로 책임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경영진의 감독 책임을 처음 구체적으로 물은 사례였다.

19932건
  1. 모저 증권사기 등 혐의로 기소

    1993년 1월 13일 살로몬의 전 정부채 데스크 책임자 폴 모저(37)가 증권사기 1건, 허위 진술 2건, 허위 장부 기재 유발 1건으로 기소되었다. 기소장은 1991년 2월 21일 63억 달러 규모 5년물 국채 입찰에서 워버그와 퀀텀 펀드를 입찰자로 허위 표기했다고 적시했다. 최대 형량은 징역 10년과 벌금 100만 달러였다. 앞서 합의 예정이던 허위 진술 2건 유죄 인정과 50만 달러 지급안은 법정 심리에서 무산되었다. 이 기소는 사건이 회사 차원의 책임을 넘어 개인 형사책임 단계로 넘어갔음을 의미했다.

  2. 모저, 징역 4개월·벌금 3만 달러 선고

    1993년 12월 폴 모저는 최종적으로 4개월의 최소 보안 교도소 복역과 3만 달러 벌금을 선고받았다. 위키백과는 모저가 이 형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이후 살로몬은 1997년 트래블러스 그룹에 약 90억 달러에 인수돼 1998년 시티그룹에 통합되었다. 이 스캔들은 재무부 경매 규정과 감독 체계 개선으로 이어졌다. 월가에서는 규정 준수 문화를 외면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는 대표 사례로 남았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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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살로몬 브라더스 미 국채 입찰 부정 스캔들과 버핏의 회사 구원(1991), 어떤 사건인가요?
1991년 8월 살로몬 브라더스가 폴 모저의 허위 명의 입찰로 미 재무부 국채 경매의 35% 한도를 위반해 온 사실을 시인하면서 거트프렌드 회장 등이 사임하고 워런 버핏이 임시 회장을 맡았으며, 회사는 2억 9천만 달러를 물어낸 월가의 대형 규제 스캔들이다.
살로몬 브라더스 미 국채 입찰 부정 스캔들과 버핏의 회사 구원(1991), 언제 일어났나요?
1991-02-21부터 1993-12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살로몬 브라더스 미 국채 입찰 부정 스캔들과 버핏의 회사 구원(1991),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93-12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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