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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종결

브레이엑스 보르네오 부상(Busang) 금광 시료 조작 사기, 60억 캐나다달러 주식 붕괴

1995-10 — 2014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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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0년대 캐나다 브레이엑스 미네랄스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부상(Busang) 금광에 거대한 금 매장량이 있다며 시가총액 60억 캐나다달러를 넘겼으나, 1997년 지질학자 데 구스만의 헬기 추락 사망과 독립 검증으로 시료 조작이 드러나 주가가 폭락했고 투자자는 최소 10억 달러를 잃었다.

2. 전개 과정[편집]

10개 기록 · 1995-10 ~ 2014

19951건
  1. 보르네오 부상 금광 대규모 금 발견 발표, 주가 급등

    1995년 10월 캘거리 기반의 브레이엑스 미네랄스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의 부상(Busang) 광구에서 상당량의 금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1993년 3월 이 광구를 사들였고 이 발표로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이후 회사는 매장량 추정치를 계속 키웠고 1997년 2월에는 5000만 온스 규모의 금 매장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숫자는 세계 최대급 금광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낳아 캐나다의 연기금과 개인 투자자가 대거 몰렸다. 하지만 이 숫자의 바탕이 된 시료는 이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19961건
  1. 주가 정점, 시가총액 60억 캐나다달러 돌파

    브레이엑스 주가는 1996년 5월 액면분할을 반영해 주당 286.50 캐나다달러로 정점을 찍었고 시가총액은 60억 캐나다달러를 넘었다. 캐나디언 백과사전은 회사가 이후 60억 달러 가치에서 동전주 수준으로 추락했다고 정리했다. 이 시기 토론토증권거래소의 대표적 광산 성장주였던 브레이엑스에는 캐나다 대형 연기금도 투자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금광 규모가 커질수록 지분이 더 오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 기대가 클수록 이후 붕괴의 충격도 컸다.

19975건
  1. 프리포트-맥모란과 부상 공동개발 합의

    1997년 2월 중순 미국 광업회사 프리포트-맥모란이 부상 금광 개발에 참여하는 계약이 발표됐고 이에 따라 브레이엑스의 지분은 45%로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포트는 계약 전후로 자체 실사를 위해 현장 시추를 진행했다. 거래 발표 직후 시장은 세계 최대급 금광이 곧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에 들떴다. 하지만 실사 단계가 시작되면서 브레이엑스의 발표와 현장 시료 사이의 괴리가 드러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거래가 조작의 파국을 앞당긴 계기였다.

  2. 수석 지질학자 데 구스만, 헬기에서 추락해 사망

    1997년 3월 19일 브레이엑스의 필리핀인 수석 지질학자 마이클 데 구스만이 인도네시아 정글 상공을 나는 헬기에서 추락해 숨졌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자살로 결론 냈지만, 시신 수습 과정과 신원 확인을 둘러싸고 위장 사망이나 타살이 아니냐는 의혹이 오래 이어졌다. 그는 부상 광구의 시료 분석을 사실상 총괄한 인물이었고, 이후 조작의 핵심 실행자로 지목된다. 그의 죽음은 브레이엑스의 매장량 주장에 대한 외부 의심이 본격적으로 커지는 계기가 됐다. 핵심 당사자가 사라지면서 누가 어떻게 조작을 기획했는지는 끝내 법정에서 가려지지 못했다.

  3. 프리포트 '금 거의 없음' 발표, 거래 정지

    1997년 3월 26일 프리포트-맥모란은 자체 실사 시추 시료에서 의미 있는 양의 금이 나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토론토증권거래소는 같은 날 브레이엑스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 프리포트의 발표가 나오자 브레이엑스 주가를 떠받치던 매장량 주장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회사의 발표와 독립 시료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에 시료가 훼손됐을 가능성이 처음으로 본격 제기됐다. 이 발표 이후 브레이엑스 사태는 투자 사기 의혹으로 번졌다.

  4. 거래 재개 첫날 주가 80% 폭락, 시가총액 약 30억 캐나다달러 증발

    프리포트 발표 다음 날인 1997년 3월 27일 거래가 재개된 브레이엑스 주식은 오후 45분 만에 80% 폭락했고, 매도 주문이 몰려 토론토증권거래소의 전산 거래 시스템이 멈춰 섰다. 이 폭락으로 시가총액 약 30억 캐나다달러가 증발했다. 캐나다 연기금의 손실도 컸는데 온타리오 교직원연금이 1억 달러, 퀘벡 예금투자공단이 7000만 달러, 온타리오 지방자치단체 직원 연금이 4500만 달러를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일반 개인뿐 아니라 연기금 가입자의 노후자금까지 흔든 증권 사기였다. 5월 독립 검증 보고서로 조작이 확인된 뒤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고 토론토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됐으며, 투자자 전체 피해는 최소 10억 달러에 이르렀다.

  5. 스트래스코나 보고서, 시료 조작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

    1997년 5월 4일 독립 검증을 맡은 스트래스코나 미네랄 서비시스는 브레이엑스의 부상 시료가 조작됐다고 보고했다. 보고서는 시료 조작과 그에 따른 금 함량 수치 위조가 '규모와 기간, 정밀도에서 광업 역사상 전례가 없다'고 평가했다. 독립 감사인들은 사마린다 인근 시설에서 시료에 외부 금이 정밀하게 첨가됐다고 확인했다. 이 보고서가 나오면서 부상 매장량 주장은 사실상 허구로 판명됐다. 브레이엑스 경영진이 주장하던 대규모 금맥은 존재하지 않았다.

19981건
  1. 설립자 데이비드 월시, 바하마에서 사망

    브레이엑스 설립자이자 전 사장인 데이비드 월시는 1998년 바하마에서 사망했다. 월시는 회사 최고경영자로서 사건 이후 관련 소송의 피고였다. 그의 재산은 파산 상태에 빠졌고 소송은 그의 유산을 상대로 이어졌다. 데 구스만과 월시가 모두 숨지면서 사기를 직접 기획한 이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졌다. 이는 이후 어떤 경영진도 형사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배경이 됐다.

20071건
  1. 존 펠더호프, 온타리오증권위 소송에서 무혐의

    브레이엑스의 지질학자였던 존 펠더호프는 온타리오증권위원회가 제기한 내부자 거래 사건에서 2007년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글로브 앤 메일은 이 사건이 사기 파문의 가장 큰 법적 드라마였다고 평가했다. 펠더호프는 부상 금맥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지질학자로 알려졌다. 이 판결로 브레이엑스 사건에서 형사나 증권 규제 책임을 진 인물은 사실상 없게 됐다. 피해자들은 소송과 합의를 통해서만 일부를 돌려받는 데 그쳤다.

20141건
  1. 마지막 투자자 소송 기각, 17년 소송 끝 회수는 극히 일부

    2014년 온타리오 상급법원의 폴 페렐 판사는 브레이엑스 관련 마지막 투자자 소송 두 건을 기각했다. 글로브 앤 메일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최소 10억 달러를 잃었지만, 금융기관 등과의 합의로 투자자에게 나눠줄 돈은 520만 달러에 그쳤다. 법원은 남은 합의 자금 420만 달러를 온타리오 법률재단에 기부하는 방안을 두고 공익을 검토했다. 약 17년을 끌어온 소송이 끝난 뒤에도 사기 가담자에게 책임을 지운 사례는 없었다. 브레이엑스는 이후 광산 투자 실사와 독립 시료 검증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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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브레이엑스 보르네오 부상(Busang) 금광 시료 조작 사기, 60억 캐나다달러 주식 붕괴, 어떤 사건인가요?
1990년대 캐나다 브레이엑스 미네랄스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부상(Busang) 금광에 거대한 금 매장량이 있다며 시가총액 60억 캐나다달러를 넘겼으나, 1997년 지질학자 데 구스만의 헬기 추락 사망과 독립 검증으로 시료 조작이 드러나 주가가 폭락했고 투자자는 최소 10억 달러를 잃었다.
브레이엑스 보르네오 부상(Busang) 금광 시료 조작 사기, 60억 캐나다달러 주식 붕괴, 언제 일어났나요?
1995-10부터 2014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브레이엑스 보르네오 부상(Busang) 금광 시료 조작 사기, 60억 캐나다달러 주식 붕괴,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14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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